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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의 10사(十事)

야사가 밧지족 출신의 비구들의 주장에 반대한 열 가지 계율의 허용범위에 관한 논쟁이다.
붓다는 입멸 전 풍속이 다른 지역에서 붓다의 법에 귀의할 경우, 해당 지역의 관습이 불법에 저촉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관습을 따를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붓다의 입멸 후 세월이 지나자 계율에 대한 해석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붓다의 입멸 100여 년 후 인도 동부 바이샬리 지역에서 밧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10가지 계율의 허용범위를 넓히기를 주장하였다. 이것을 십사비법(十事非法) 혹은 야사십사(耶舍十事)라고 한다. 야사십사는 이 10가지 주장에 반대한 대표적인 인물이 야사(Yasa)이기 때문에 앞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 10항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염사정(鹽事淨): 소금을 약이 아닌 음식물로 보관해 두었다가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② 이지정(二指淨): 태양의 그림자가 정오에서 손가락 두 개의 너비를 지날 때까지는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③ 수희정(隨喜淨): 한 번 탁발을 해서 식사를 한 후에도 오전 중이라면 다른 마을에서 탁발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④ 도행정(道行淨): 도량 내에서 식사를 마쳤더라도 도량 밖에서라면 다시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⑤ 낙장정(酪漿淨): 정오 이후에도 꿀이나 석밀(石蜜) 등을 섞은 우유를 마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⑥ 치병정(治病淨): 발효되기 전의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⑦ 좌구정(坐具淨): 비구의 체구에 따라 좌구, 즉 방석의 크기를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⑧ 구사정(舊事淨): 이전 사람이 하던 일을 따라 하면 율에 위반되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⑨ 고성정(高聲淨): 갈마법을 짓고 나중에 와서 억지로 다른 이의 용서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⑩ 금보정(金寶淨, jātarūparajata): 비구가 금은이나 돈을 소유하여 저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밧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10가지 계율을 관습이라고 설하며 따르기를 주장할 시기에 비구 야사가 이 지역에 머무르게 되었다. 야사는 재가자들에게 금전 보시를 못 하도록 설하였으나 바이샬리 지역의 신도들은 계속해서 승가에 금은과 돈을 보시하였다. 금전을 보시받은 밧지족 비구들은 야사에게도 보시금을 배분하였는데 이를 거절하자 야사가 재가자들의 정신을 욕되게 한다며 하의 갈마를 행하였다. 그러나 ‘비구는 어떠한 경우에도 금전을 받을 수 없다’는 야사의 설법에 설득된 신도들이 금전보시를 중지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야사는 서인도와 아반띠, 데칸 지역의 비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밧지족 출신 비구들이 주장하는 10사를 배척하고 정율(正律)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하였다. 특히 이 쟁사에 대한 바른 판단을 위해 많은 비구들의 존경을 받던 레와따(Revata) 장로에게 십사에 관한 판정을 요청하였으며, 상법정(常法淨)에 관해서만 부분적으로 인정한 레와따 장로는 아난다의 제자인 삿바까미 장로 및 여러 비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와 같이 십사와 관련한 논쟁은 승가의 결집으로 이어져, 700여명에 달하는 비구가 십사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를 칠백결집(七百結集)이라고도 하는데, 이 결집에서 십사의 내용에 관한 심의가 이루어졌으며 ‘10개의 항목 모두 사법(邪法)이며, 사율(邪律)이고 스승의 가르침과는 멀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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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원, 출가자의 소유를 둘러싼 십사비법논쟁은 불교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붓다빅퀘스천 37]
    유튜브 채널: 불광미디어 상세정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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