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데와닷타의 교단분열 시도

데와닷타는 석가모니의 사촌으로 붓다를 해치려 하고 초기불교 교단을 분열시키려는 등의 악행을 하였다.
데와닷타(Devadatta)는 제바달다(提婆達多)로도 불리며 조달(調達),천수(天授) 등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데와닷타는 석가모니의 사촌으로 20세가량 연하이며, 붓다의 성도 이후 6년째 되는 해에 불교교단에 출가하여 12년간 정진 수행에 전념하였다. 이후 붓다에게서 교단에 대한 지위 계승을 요구하다가 거부당하자 점차 악심이 생겼으며 6사외도 중 1인으로부터 신통력을 배웠다. 이후 아자타삿투 태자에게 접근하여 점차 세력을 키웠다.
데와닷타가 초기불교교단에서 대표적인 악인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붓다를 여러 방법으로 해치려 한 점도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기불교교단을 분열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비구들이 그의 문하로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십송율』권36에는 5백 명의 비구가 데와닷타파에 가담했다가 데와닷타 사후, 사리불과 목건련의 인도로 다시 불교교단으로 돌아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 적지 않은 비구들이 데와닷타를 따랐던 이유는 보다 엄격한 규칙을 제정하여 선포하였기 때문이다. 데와닷타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다섯 가지 규칙을 제정하여 따르도록 했다. 첫째 소금을 먹지 말 것, 둘째 우유를 먹지 말 것, 셋째 물고기를 먹지 말 것, 넷째 오직 걸식만 하고 신도들이 청하는 공양에 참석하지 말 것, 다섯째 항상 밖의 나무 아래에서만 생활할 것의 다섯이다. 이는 당시 고행을 훌륭한 수행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일부 비구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엄격한 고행주의에 현혹된 여러 비구들이 데와닷타를 칭송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붓다는 사리불과 목건련을 보내어 데와닷타를 추종하고 있는 5백 명의 제자들을 데려 오라고 하였고, 이들의 노력에 의하여 5백 제자들이 다시 되돌아옴으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5세기 법현의 기록과 7세기 현장의『대당서역기』 등에는 데와닷타의 설을 신봉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7세기경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이 파는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법화경』「제바달다품」에서는 데와닷타가 선지식으로서 크게 찬탄되고 있으며 결국 성불하였다고 설해져 있다. 즉 데와닷타가 “대법(大法)을 구하는 과거세의 세존을 지도한 대선지식이었으며 부처님은 데와닷타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성불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데와닷타 또한 성불할 수 있다는 수기를 내리기도 하였다. 이로부터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