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계맥의 부흥은 대은 낭오, 만하 승림에 의해 이루어졌고, 용성 진종은 일제 강점기 한국불교의 계율 기강을 살리는 데 힘썼다.
조선대에서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인해 국가가 관장하는 관단수계(官壇受戒)가 금지되었고 공식적인 수계의식도 이루어지지 않아 계맥(戒脈)이 점차 단절되어 갔다. 그럼에도 사찰 단위에서 수계식이 미비하게나마 이루어진 가운데 19세기 초에는 끊겼던 계맥을 되살리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영광 도갑사의 대은 낭오(大隱朗旿, 1780-1841)는 율종(律宗) 중흥을 발원하고, 1826년 지리산 칠불선원에서 스승인 금담(錦潭)과 함께 『범망경』「심지계품」과 『보살영락본업경』의 가르침에 따라 자서수계(自誓受戒)를 발원하고 7일간의 용맹정진 기도 끝에 서광(瑞光)이 내리는 이적을 경험하게 된다. 스승인 금담은 이것이 율전에 설해진 서상수계(瑞祥受戒)임을 확신하고 제자인 대은에게 예를 갖추었으며, 이로써 조선불교의 계맥이 중흥되었다. 이후 초의(草衣), 범해(梵海), 선곡(禪谷), 용성(龍城) 등으로 대은의 계맥이 전승되어 왔다. 대은의 서상수계 계맥은 순교로 단절되었던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의 계맥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하 승림(萬下勝林)은 대은의 서상수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중국에서 직접 계맥을 잇기로 하고, 1892년 중국으로 건너가 법원사(法源寺) 계단의 창도 한파(昌濤漢波) 율사로부터 대·소승계를 받고 계맥을 전수받았다. 중국에서 돌아온 만하는 1897년 7월 양산 통도사에 계단을 설치하고 처음으로 수계법회를 가져 근대기 한국불교의 계맥을 부흥시켰다. 만하 승림의 계맥은 해담 치익(海曇致益)·회당 성환(晦堂性煥)·월하 회중(月下喜重) 등으로 이어졌다.
근대기와 일제시대에는 계율이 ‘무애행’, ‘구속’, ‘고정관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지계 의식이 급격히 무너지고, 왜색불교의 영향으로 출가수행자의 파계가 만연하면서 그나마 이어지던 한국불교의 계율 전통은 그 명맥을 잇지 못하고 단절되어 갔다. 용성 진종(龍城震鐘, 1864-1940)은 1884년 21세가 되던 해,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대은의 계맥 전통을 이은 선곡으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용성은 자신이 이은 계맥을 환경, 동산, 고암, 고봉 등 수많은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한편 스스로 전계화상으로 나서 한국불교 계맥의 중흥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승려들의 결혼을 반대하면서 출가자의 지계를 강조했을 뿐 아니라 ‘용성조사 세간 5계’를 만들어 재가자들에게도 지계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용성은 『범망경』을 한글로 번역해 재가불자들로 하여금 계율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이끌었다. 지금까지 용성은 근대 한국불교 계율의 중흥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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