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보살계 수지가 주를 이루었으며, 수계를 국가가 운영하는 계단에서 받는 관단수계도 성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가가 지정하여 운영하는 계단(戒壇)에서 출가자가 수계를 받는 관단수계(官壇受戒)가 성행하였다. 계단에는 각 사찰에서 설립하여 운영했던 사단(寺壇)과 국가가 지정한 관단이 있다. 관단의 대표적인 사례는 통도사의 금강계단이다. 이는 신라시대 선덕여왕의 지시로 자장(慈藏)이 설립했으며, 가장 대표적인 관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외에도 효성왕 대에는 진표가 금산사에서 매년 계단을 열어 수계를 주기도 하였다. 신라는 이처럼 관단이 폭넓게 운영되었으며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많은 관단이 성행하게 되었다. 고려 초부터 개경 및 인근 지역의 사원에 관단을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대표적으로 고려 태조 7년에는 흥국사(興國寺)에 관단이 설치되었고, 태조 18년에는 개국사(開國寺)에서도 대규모 수계가 이루어졌다.
고려대에는 국가가 불교를 후원하는 한편 승정을 통해 출가시 수계 단계부터 국가가 관리하였다. 경과 율에 대한 시험을 봐야 한다는 출가 규정을 법제화하였고, 사원의 경제 활동이나 승려의 복식에 대한 통제도 이루어졌으며, 승려의 범죄에 대해서도 국가가 속법으로 다스리기도 하였다. 일례로 4바라이죄를 저지른 승려를 속법에 의해 강제 환속시키기도 하였고, 사원에서의 양조 및 판매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겼을 시에는 사례별로 귀향을 보내거나 환속시키기도 하였다. 고려대의 관단수계 의식은 주로 『사분율』에 의거하여 이루어졌으며, 도선의 남산율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에는 신라시대를 이어 보살계 역시 성행하였다. 심지어 국왕도 보살계를 수계하였는데 이는 신라시대 이후의 전통이기도 하였다. 태조가 스스로를 보살계를 받은 제자라고 한 이래로 국왕의 보살계 수계는 공민왕 대까지 이어졌다. 보살계를 받은 국왕의 통치 행위는 곧 보살의 교화활동이라는 권위를 갖게 되었고, 또한 보살계를 준수하고 자비행을 펼치는 자비로운 존재로 형상화되었으며, 국왕인 보살이 다스리는 땅은 불국토로 신성화되었다. 국왕 및 관료 등의 수계는 주로 『범망경』에 담긴 보살계에 의거한 것이다. 『범망경』보살계」는 10중대계(十重大戒)와 48경구계(四十八輕垢戒)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고려시대의 불교는 『사분율』과 『범망경』 보살계라는 양대 흐름에 의해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 중기 이후 선종의 전래와 더불어 청규가 도입되었는데, 지눌은 수선사 결사를 통해 『계초심학인문』을 설파하였고 늦어도 고려 후기에는 청규가 실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민왕 대에는 『칙수백장청규』의 실천을 통해 불교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고려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지속적으로 보살계의 수지와 실천이 주를 이루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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