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불교는 고구려의 백고좌 법회와 팔관재법회를 계승하였으며 보살계가 성행하였다.
신라는 제23대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의 순교 이후 불교가 받아들여져서 국가적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성문율(聲聞律)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지만, 자장(慈藏)이 수계(授戒)하고 보살계본을 설하였다는 기록에서 보살계도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신라에서는 고구려에서 온 혜량(惠亮)에 의해 백고좌법회와 팔관재법회가 행해졌다.
팔관재법회는 팔재계를 근거로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신라에서도 불교가 전래된 초창기부터 포살과 수계의식이 행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진흥왕은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의 망령을 추도하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팔관재회를 베풀었다. 신라의 율학은 원광(圓光, 550-630 혹은 640)과 자장에 의해 기틀이 마련되었으며 발전하였다.
원광은 『범망경』의 십중계(十重戒)를 새롭게 해석하여 화랑도가 지킬 수 있도록 새로운 오계를 제정하였다. 세속오계는 ‘임금은 충성으로 섬기고(事君以忠), 어버이는 효로 섬기고(事親以孝), 벗은 믿음으로 사귀고(朋友有信), 전쟁에 임해서는 물러나지 않으며(臨戰無退), 살생은 가려서 해야 한다(殺生有擇)’ 다섯 가지 계이다. 이 가운데 살생유택은 불살생의 금계를 시대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것으로 봄과 여름 및 육재일(六齋日)에는 살생을 하지 말고, 소·말·닭·개 등의 가축은 죽이지 말며, 잘게 썬 고기 한 점보다 작은 미물(微物)들은 죽이지 말라는 등을 지키게 하였다.
자장은 한국 율종의 개창조로 “나는 하루를 계율을 지키다가 죽을지언정 일생을 파계하면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며 계율을 자신의 목숨보다도 귀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자장은 대국통(大國統)이 된 이후에 승니의 기강을 바로잡고 교단을 총관(總管)하였으며,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을 세워 수계의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신라불교 율학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삼국유사』에서는 자장이 황룡사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 보살계본을 강설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보살계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등 신라의 불교는 성문율와 더불어 보살계가 성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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