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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계율의 전래와 수용

우리나라에 계율이 처음 전해진 시기는 삼국시대이며, 백제 침류왕 때를 최초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 계율이 전래되어 수용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한국불교는 대부분 인도로부터가 아니라 중국을 통해 전래된 것으로 계율 역시 마찬가지이다. 삼국 중 고구려는 소수림왕 대인 372년 전진의 왕 부견(符堅)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를 통해 불상과 경문을 보내면서 불교가 공인되었다. 396년에는 동진의 승려 담시(曇始)가 경율 수십 부를 가지고 고구려에 와서 10여 년간 불법과 수계(受戒)에 대한 가르침을 폈지만 담시가 전한 계율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고구려 승려 의연(義淵)은 576년 북제에 가서 법상(495~580)으로부터 담무참이 역출한 『보살지지경』을 전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살지지경』에는 대승보살계인 삼취정계(三聚淨戒)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6세기 고구려에는 대승보살계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5-6세기경에는 고구려 승려들이 중국으로의 구법 유학이 활발해져 승랑(僧朗)은 승조(僧肇)의 삼론학을 배워오기도 하고, 율장에 대한 가르침도 가져와 일본에 전하기도 하였다.
백제는 384년(침류왕 1) 동진에서 호승(胡僧) 마라난타가 오고 다음 해에 10명이 승려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 사실로부터 385년 백제에 승단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한국에 계율이 처음 들어온 것을 이 때로 보기도 한다. 526년 겸익(謙益)은 중앙 인도의 상가나대율사(常伽那大律寺)에서 5년 동안 범어와 율부(律部)를 배운 뒤 인도 승려 배달다(倍達多) 삼장과 함께 범본 5부 율을 갖고 들어와 총 72권으로 번역․편찬하면서부터이다. 이 오부율은 소승 5부의 율학에 해당된다. 겸익의 제자인 담욱과 혜인은 율부를 주석한 율소(律疏) 36권을 저술했다. 백제불교는 계율을 중요시 하였고 불교계뿐만 아니라 왕실도 계율을 중시하였다. 이로 인해 백제는 계율학이 발전하여 일본으로 계율을 전해주었다. 588년 일본에서 선신니(善信尼)가 백제로 건너와 율학을 배우고 돌아갔고, 602년에는 관륵(觀勒)이 일본으로 가서 계율을 전하기도 했다. 신라는 3국 중 가장 늦게 불교가 공인이 되었는데, 527년(법흥왕 14) 이차돈의 순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진흥왕 시기에는 일반인들의 출가가 허용되었는데 이전에 불교교단이 성립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551년(진흥왕 12)에는 고구려 혜량(惠亮)이 신라로 와서 백고좌회와 팔관회를 개최하였다. 팔관회는 인도의 팔계재(八戒齋)에서 유래된 것이다. 진평왕 대에는 신라에서 계율이 더욱 중요시되어 진나라로부터 지명(智明)이 귀국하자 진평왕은 그의 계행을 존숭했다. 지명의 저술 중 『사분율갈마기(四分律羯磨記)』가 있으므로 신라에서 사분율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진평왕대 원광은 진나라로부터 귀국하여 점찰법을 통해 대중교화에 주력하였다. 원광의 점찰법은 점찰을 설행하기 앞서 참회와 보살계 수계를 중시했다. 또한 선덕왕대 자장율사(590-658)는 “하루라도 계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백 년 동안 파계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출가하기도 하였다. 이후 자장은 사분율을 중요시하여 이에 기초하여 지계할 것을 승려들에게 요청하였다. 물론 자장이 보살계를 설하기는 했으나 자장이 중요시 한 것은 사분율을 통한 엄격한 계율의 실천과 출가 및 수계의식의 정비, 불교교단의 정화였다. 자장율사 이후 의상(625-702)은 대승계를 강조하는 『열반경』을 수학하여 엄격한 지계정신을 강조하였다. 원효(617-686)는 소승계와 대승계를 포섭한 『범망경보살계본사기(梵網經菩薩戒本私記)』와 범망계와 유가계를 종합한 『보살계본지범요기(菩薩戒本持犯要記)』를 저술하여 소승계와 보살계를 회통하였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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