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율종의 효시는 남산율종으로 당(唐)대에 도선에 의해 창립되었다.
남산율종은 중국의 대표적인 율종으로 당나라의 도선(道宣)이 세운 종파이다. 중국의 율종은 계율을 종(宗)으로 하는 종파이다. 중국에 율전 형태로 계율이 처음 전해져 번역된 것은 안세고이고 이후 불도징(佛道澄, 232-348)이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전하는 율장 중 일부를 바로 잡기도 하였다. 도안(道安, 312-384)이 중국에 맞는 계율의 정비에 힘써 『승니규범(僧尼規範)』을 저술하였다. 도안의 제자 혜원(慧遠, 334-410)은 율장을 늘 독송하고 확인하면서 생활화하였다. 이들과 같은 선대 승려들이 계율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덕분에 중국에서 초창기 교단의 기반이 확립되었다. 5세기 초엽 동진 시대에 각 부파의 율장이 모두 번역되었다. 혜원이 역출한 『십송률』은 남북조시대에는 성행했으나, 수·당대에는 『사분율(四分律)』이 대신했다. 북위의 효문제(471-499) 대에 법총(法聰)이 『사분율(四分律)』을 연구하여 사분율종의 기초를 세웠고, 북제(北齊, 550-577)의 혜광(慧光, 468-537)에서 시작된 『사분율(四分律)』 학파가 발전하여 종파로서의 율종이 되었다.
이후 중국 율종은 분열되어 법려(法礪, 569-635)의 상부종(相部宗), 도선(道宣, 596-667)의 남산종(南山宗), 회소(懷素, 625-698)의 동탑종(東塔宗) 등 셋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 세 파 가운데 상부종과 동탑종은 사라지고 오직 도선의 남산율종만이 번성하여 송대까지 이어졌다.
남산율종의 초조인 도선은 지수로부터 10년간 『사분율(四分律)』을 배워 626년부터 645년 사이에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閼行事鈔)』, 『사분율산보수기갈마소(四分律刪補隨機羯摩疏)』, 『사분율주계본소(四分律注戒本疏)』등 사분율 관련 3대소와 『사분율습비니의초(四分律拾毘尼義鈔)』와 『사분율비구니초(四分律比丘尼鈔)』를 저술하였는데 이 다섯 가지 주석서가 남산율종의 5대 소초가 되었다. 도선은 667년 장안 인근 정업사(淨業寺)에 계단(戒壇)을 세운 후 20여 명에게 계를 주었다. 또한 계단을 세우는 방법을 적은 『관중창립계단도경(關中創立戒壇圖經)』을 저술하여 계단의 기원, 명칭, 모습 등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였다.
도선은 계를 지지(止持)와 작지(作持)의 두 가지로 나누고, 지지란 곧 악행을 범하지 않는 것(諸惡莫作)으로서 『사분율』에 의해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를 지키는 것이고, 작지란 선행을 행하는 것(衆善奉行)으로 12건도에 포함된 수계(受戒)·설계(說戒), 안거 및 일상생활의 갖가지 규칙을 포괄한다고 강조했다.
도선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인물로는 신라의 자장(慈藏)율사가 있는데, 그는 종남산 운제사(雲際寺)에서 수학하면서 도선과 교유하였고, 귀국할 때 불사리 백과를 가져와 통도사(通度寺)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세워 율종의 문호를 열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
계율학 개론
-
中國佛敎史
-
중국불교사상사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