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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독립과 청규의 등장

선종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종파이며, 백장 회해 이후 자체적인 규율집인 백장청규가 만들어졌다.
선종은 중국의 남종선 계열에서 만들어진 종파이다. 선종은 보리 달마(菩提達磨)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간 때부터 비로소 성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선종의 개조는 보리 달마로 알려져 있다. 오조 홍인(五祖弘忍, 601-674)이후에는 동산법문이라는 형태로 수행 집단이 출현하고, 신수계의 북종선과 혜능계의 남종선이 구분되어 이후 5가 7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백장 회해(百丈懷海, 720-814) 이후, 수행집단의 규율인 청규가 세워짐에 따라 선종교단은 불교집단에서 독립하게 된다. 선수행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수행을 중시하는 중국 선종은 인도의 선법과는 매우 다르며, 특히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홍주종(洪州宗)은 중국선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중국 선종은 문화와 풍습이 다른 인도와는 다르게 중국내 수행자들에게 적합한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마조 이후 그의 제자인 백장 회해는 중국 선종에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 먼저, 백장은 종래에 지켜오던 계율이 기후풍토와 습관에 맞지 않아 여러 문제점에 봉착했기 때문에 대소승 계율을 절충하여 선원청규를 새롭게 제정하였다. 이는 종래의 율사(律寺)에 소속되어 있던 선원을 독립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선원청규의 등장과 이에 바탕을 둔 사찰의 운영이 결과적으로 선종 고유의 전통을 확립시켰다.
선종을 대표하는 문구 중 하나는 ‘불립문자 교외별전’이며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다. 또한 청규라는 자체적인 율(律)에 의한 사찰의 운영 등을 꼽을 수 있다. 인도와는 다르게 중국식 사찰운영이 이루어진 때는 사조 도신 이후이다. 도신은 3조 승찬(僧璨)을 떠난 후 기주 황매현의 쌍봉산에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30년간 살면서 500여명의 문하를 거느렸다. 이러한 집단생활은 전통적인 수행과 생활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총림이라는 형태로 굳어지게 된다. 집단생활은 수행과 계율 모두에서 선종 특유의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집단적인 수행생활을 하게 되면 당연히 그곳에는 집단생활을 다루는 규칙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청규라고 하는 선문의 독자적인 계율로 발전해 갔다. 몇 백 명이 머무는 대집단이 되면 두타행을 하기가 어렵게 되므로 자급자족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자급자족을 위한 울력 및 기타 생활도 선수행이라는 사상이 싹튼다. 일하는 것도 선이고 앉아있는 것도 선, 차 마시고 밥 먹는 일도 모두 선이 아닌 것이 없다는 어묵동정(語默動靜) 식 사고는 후세의 선의 대표적인 사상이 되었다.
백장 회해는 소규모의 수행공동체에게 적용될 수 있는 청규를 최초로 성문화시킴으로써 선종을 중국적인 수도규칙과 사찰을 가진 하나의 종파로 독립시켰다. 다시 말해서 혜능에게서 시작하고 마조에서 완성된 중국 조사선이, 백장에 와서는 외적 형식으로 까지 변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청규의 제정과 더불어 명실상부하게 선종이 율종 중심의 사원으로부터 독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존하는 백장청규는 원나라 시대에 성립한 『칙수백장청규』를 말한다. 백장이 당시 만들었던 청규는 지금은 실전되었는데, 이 백장청규를 ‘고청규’ 또는 ‘백장고청규’라고 부른다. 후대에 백장청규의 정신에 근거하여 제정된 것이 『칙수백장청규』이다. 백장청규 외에도 여러 청규가 제정되었는데 이를 통해 후대 선문의 수행가풍은 물론 생활양식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청규(淸規)란 대중들이 모두 함께 준수해야 할 규칙·규율이라는 뜻이다. 선종사원의 운영방침, 생활규칙, 규율 등을 제정한 정관으로서, 한 도량에서 수행 정진하는 구성원이라면 상하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지켜야할 공통된 규약이다. 백장고청규에 이어 두 번째로 성립한 청규로는 북송(北宋) 대에 자각 종색(慈覺宗賾, 1009(?)-1092(?))이 편찬한 『선원청규(禪苑淸規)』 10권이 있다. 이후의 청규들은 이 선원청규를 바탕으로 편찬되었다. 우리나라 고려본 선원청규는 이 청규의 복간본에 해당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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