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결집은 불멸 후 236년경 아소까왕의 후원으로 목갈리뿟따띳싸 장로가 중심이 되어 빠딸리뿟따에서 실행된 성전 편찬 회의이다.
불교 성전의 편찬 회의인 결집(結集, saṃgīti)[1] 결집(結集)은 ⓢsaṃgīti, saṅgīti ⓟsaṃgīti, saṅgīti ⓣyaṅ-dag-par-sdud-pa, 합송(合誦)이라고 한역한다. 본래 의미는 기억하는 교법을 함께 소리 내어 암송하는 것이나, 후대에 이르러 성전 편집을 의미하게 되었다. 『가산대사림』제1권, p.656. 제3결집 참고.은 남방불교권과 북방불교권에서 각각 두 가지 내용으로 전승된다. 빨리상좌부(Theravāda) 계통의 전통을 이어받은 남방불교권에서는 모두 6차에 걸친 결집을 전하는데, 제1·2·3차는 인도에서, 제4차는 스리랑카에서, 제5·6차는 미얀마에서 열렸다[2] 미즈노고겐, 이미령(1996), 『경전의 성립과 전개』, 시공사, pp. 126-128 참조.. 북방불교권에서는 1·2·3차의 결집이 모두 인도에서 열린 것으로 전해지며, 제1차는 라자가하, 제2차는 웨살리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여 남방불교권의 전승과 같고, 제3차는 쿠샨 왕조의 까니쉬까(Kaniṣka)왕 재위 기간(127-151)에 설일체유부가 중심이 되어 실행된 것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인도불교 교단사에서는 남방불교권의 빠딸리뿟따(Pāṭaliputta) 결집을 제3차로 정하였으며, 까니쉬까왕 때의 결집을 제4차로 삼았다.
아소까왕 석주_01(혜운)
제1·2차 결집은 부파 분열 이전의 불교 승단 전체의 결집이었으며 여러 부파에서 전하는 율장(律藏)에 공통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제3차 결집은 분별설부(分別說部, Vibhajjavādin)라는 하나의 부파(部派) 내에서 열린 결집이며, 이는 빨리율의 주석 『사만따빠사디까(Samantapāsādikā)』와 스리랑카의 빨리 연대기 『디빠왕사(Dīpavaṃsa)』, 『마하왕사(Mahāvaṃsa)』에서만 언급되고 있다. 이들 문헌에 의하면, 제3차 결집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236년경, 인도 마우리야 왕조 제3대 아소까(Aśoka)왕의 후원으로 목갈리뿟따띳싸(Moggaliputtatissa) 장로가 중심이 되어 빠딸리뿟따라는 도시에서 행해졌다. 이때 정설로 채택한 분별설(Vibhajjavāda)이 스리랑카로 전해져 현재 남방불교 교리의 토대를 이루었다고 한다.
아소까왕 석주_02(혜운)
제3차 결집이 열리게 된 배경에는 불교 승단을 위한 아소까왕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소까왕은 즉위한 지 8년째 되던 해에 병에 걸린 한 장로가 약을 구하지 못해서 죽게 되었다는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왕은 그때부터 불교 승단에 필요한 것이라면 아낌없이 후원하였다. 그러나 아소까왕의 막대한 보시는 결국 불교 승단 이외의 종교인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이익과 공경에 눈이 멀어 구족계(具足戒)도 받지 않은 채 불교 승단에 숨어들어와 많은 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은 비구들은 포살(布薩) 실행을 거부하였다. 포살은 화합을 중시하는 불교 승단에서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포살이 7년 동안이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이 사실은 아소까왕에게 알려졌고, 왕은 다시 포살을 행하게 하려고 승단에 대신을 보냈다. 대신은 이 분쟁을 물리적으로 해결하려다가 몇몇 비구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매우 놀란 아소까왕은 당대 고승인 목갈리뿟따띳싸 장로를 불러 이 사태를 수습하게 하였다. 장로는 분쟁을 해결하고, 뛰어난 천 명의 비구들을 가려내어 빠딸리뿟따에서 결집을 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까타왓투(Kathāvatthu, 論事)』가 성립되었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으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아 인도 안팎으로 전도사를 파견하게 되었다.
제3차 결집은 천인결집(千人結集)이라고도 한다. 이때 성립된 『까타왓투』를 집대성한 것이 논장(論藏)이며, 이로써 경·율·논(經·律·論) 삼장(三藏)이 완성되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주석
- 주석 1 결집(結集)은 ⓢsaṃgīti, saṅgīti ⓟsaṃgīti, saṅgīti ⓣyaṅ-dag-par-sdud-pa, 합송(合誦)이라고 한역한다. 본래 의미는 기억하는 교법을 함께 소리 내어 암송하는 것이나, 후대에 이르러 성전 편집을 의미하게 되었다. 『가산대사림』제1권, p.656. 제3결집 참고.
- 주석 2 미즈노고겐, 이미령(1996), 『경전의 성립과 전개』, 시공사, pp. 126-12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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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따빠사디까』의 서문과 빨리 연대기에서 제3결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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