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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결집과 율의 편찬

제1차 결집은 오백결집 또는 왕사성 결집이라고도 하며, 우바리를 중심으로 율장 결집이 이루어졌다.
왕사성(王舍城)의 영취산(靈鷲山)(혜운)
결집(結集)은 범어 상기띠(Saṃgīti)를 의역한 것으로 경(經)·율(律)·논(論) 삼장(三藏)의 편찬 회의를 뜻한다. 상기띠는 ‘함께 노래하다’를 의미하는데, 이 상기띠라는 말로부터 다수의 비구가 모여 각자가 기억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문답(問答)으로 확인하고, 함께 합송(合誦)한 후에 동의가 이루어지면, 그 내용을 다 같이 공유하는 형태의 편찬 회의를 결집이라고 하게 되었다. 제1차 결집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전해진다. 인도불교 당시 부파(部派)들의 『율장(律藏)』 「오백건도(五百揵度)」와 초기 『열반경(涅槃經)』 계통의 경전, 초기 빨리어 연대기 등에 전승되고 있는데, 이들에 의하면 제1차 결집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바로 그해[기원전 486년 또는 368년][1]각에띠엔 라모뜨; 호진(2006), 『인도불교사』, 시공사, pp. 248-249 참조.에 이루어졌다. 500명[또는 3000명, 1000명]의 아라한이 왕사성(王舍城, Rājagṛha, Rājagaha)의 칠엽굴(七葉窟, Saptaparni cave)[또는 기사굴산, 죽림정사, 필발라 석굴]에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합송하였기 때문에, 오백결집(五百結集) 또는 왕사성[라자그리하, 라자그라하] 결집이라고도 한다.
제1차 결집에 관한 여러 문헌에 근거하여 왕사성 결집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80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자, 그의 제자들은 비탄에 젖어 어찌할 바를 몰랐고, 심지어 슬픔을 못 이겨 땅 위에서 온몸을 뒹굴며 오열하는 자도 있었다. 그 가운데 좀 더 현명한 자들은 불가피한 이 사태를 잠잠히 받아들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수달다(須達多, Subhadda, Subhadra) 비구가 말하였다. “이보시오, 무엇을 그리 슬퍼합니까. 우리는 이제 저 대사문(大沙門, 부처님)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그가 살았을 때는 ‘이것을 해라, 이것은 하지 말아라.’ 하면서 우리를 속박했지만, 이제는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들은 대가섭(大迦葉, Mahākassapa) 장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어리석은 자들이 이제 스승의 말씀을 과거의 것으로 생각하여 머지않아 패거리를 이루어 정법(正法)을 파괴하겠구나. 그러나 법(法)과 율(律)이 존재하는 한, 스승의 가르침은 과거의 것으로 되지 않을 것이다. 스승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내가 가르쳐준 법과 제정한 율이야말로 내가 열반한 후에 너희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러니 스승의 가르침을 영원히 보존하고 오래도록 머물도록 법과 율을 결집하자.”
이처럼 제1차 결집을 실행하게 된 원인은 승가 내부 구성원의 위험한 발언 때문이었으며, 그 목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데 있었다. 대가섭 장로는 동료 비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 후, 승가의 대표가 되는 아라한 499명을 선발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측근에서 가장 많이 가르침을 듣고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아난(阿難, Ānan)을 불렀다.[2]여기에서는 대중과 무관하게 대가섭이 스스로 500명을 모두 선출한 것으로 설해졌지만, 대중이 대가섭에게 결집에 관한 모든 것을 위임하였다거나, 대가섭이 제의하면 대중이 동의하여 500명의 아라한을 선출한 것으로 설해진 기록도 있다. 그러나 아난은 아직 아라한과를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표 자격을 얻을 수 없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아난은 결집 당일 새벽에 극적으로 아라한과를 성취하였다.[3]대부분의 자료에서는 이처럼 서술되지만, 『사분율』, 『빨리율장』에서는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아난에게 백이갈마(白二羯磨)를 하여 그대로 경장(經藏)을 암송하게 하였다고 설해진다. 이렇게 500번째 아라한인 아난이 칠엽굴에 들어서자, 드디어 왕사성 결집이 시작되었다. 장소는 당시 마가다(Magadha)의 국왕인 아자따삿뚜(Ajātasattu)가 제공해 주었다. 대가섭 장로는 500명의 아라한이 모인 자리에서 질문하였다. “가장 먼저 무엇을 결집할까요. 법입니까? 율입니까?” 그러자 비구들이 대답했다. “율은 부처님 가르침의 생명입니다. 율이 확립하고 있을 때, 법도 확립할 것입니다. 따라서 율을 먼저 결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처님 당시부터 지속하여 계율을 가장 잘 지키고 있던 우바리(優婆離, Upāli)를 중심으로 율의 결집이 이루어졌다. 결집이 이루어지는 방법은 문답과 확인, 합송, 동의에 의한 순서에 따라 진행되었다. 대가섭 장로가 율의 조문에 관해 하나씩 질문하면, 우바리는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언제, 어디서, 누구의 악행을 계기로 처음 제정되었으며, 그 후에 추가된 내용은 없는지, 무죄로 결정된 사례는 없는지 등’에 대해 상세하게 대답하였다. 그러면 나머지 비구들이 자신들의 기억과 다른 것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율에 관한 모든 조문이 확인되고, 이의를 제기하는 비구가 없으면, 500명이 다 같이 합송하고 율장 결집을 마무리하였다. 이어서 율을 결집하던 방식 그대로, 아난을 중심으로 하여 경장 결집을 진행하였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주석
  • 주석 1 각에띠엔 라모뜨; 호진(2006), 『인도불교사』, 시공사, pp. 248-249 참조.
  • 주석 2 여기에서는 대중과 무관하게 대가섭이 스스로 500명을 모두 선출한 것으로 설해졌지만, 대중이 대가섭에게 결집에 관한 모든 것을 위임하였다거나, 대가섭이 제의하면 대중이 동의하여 500명의 아라한을 선출한 것으로 설해진 기록도 있다.
  • 주석 3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이처럼 서술되지만, 『사분율』, 『빨리율장』에서는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아난에게 백이갈마(白二羯磨)를 하여 그대로 경장(經藏)을 암송하게 하였다고 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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