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백중에 맞추어 49일간 영가천도를 위한 백중기도 및 등을 밝히고, 우란분절에 회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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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분절의 의미우란분절(盂蘭盆節)은 음력 7월 15일에 행해지는 의례로서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재(齋)를 베풀며 부모와 조상의 은혜를 기리는 행사이다. 우란분절은 불교 5대 명절 가운데 하나이며, 동아시아 불교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오랜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불교의례 행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백중이라고 부른다. 우란분(盂蘭盆)이란 산스크리트어 ‘울람바나(ullambana)’의 음역(音譯)으로서 바리 우(盂), 난초 란(蘭), 쟁반 분(盆)자를 써서 ‘꽃과 갖가지 음식’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산스크리트어 울람바나는 ‘거꾸로... -
우란분절과 우란분재우란분절(盂蘭盆節)은 ‘우란분(盂蘭盆)’에 절기를 나타내는 ‘절(節)’을 붙인 것이며, 우란분재(盂蘭盆齋)는 불공(佛供)을 올린다는 의미의 ‘재(齋)’를 붙인 것이다. 특히 불교의례와 의식에 있어 ‘재(齋)’와 ‘제(祭)’가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제사를 의미하는 ‘제(祭)’와 불교에서 지내는 ‘재(齋)’는 다르다. ‘제(祭)’가 신(神)에게 음식을 올리는 것에 비해, ‘재(齋)’는 부처님과 그 수행자들에게 올리는 공양 즉 반승(飯僧)을 의미한다. ‘재(齋)’는 산스크리트어 ‘우포사다(upoṣadha)’를 ... -
우란분절과 백중·백종·중원음력 7월 15일을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다. 우란분(盂蘭盆)이라는 공통된 단어에 절기를 나타내는 절(節), 불공을 올린다는 의미의 재(齋), 법회를 의미하는 회(會), 불공을 의미하는 공(供)을 붙여 우란분절(盂蘭盆節), 우란분재(盂蘭盆齋), 우란분회(盂蘭盆會), 우란분공(盂蘭盆供)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백중, 백종, 중원, 망혼일 등으로도 불린다. 백중, 백종의 경우 한자 표기 방법에 따라 그 해석 방식도 달라진다. 1. 백중 1) 백중(百衆) : ‘무리 중(衆)’에 ‘일백 백(百)’자를 써서, 음력 4월 1... -
불교경전에 나타난 우란분절의 기원우란분절의 근원이 되는 『우란분경』의 원전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중국 서진(西晉) 시대에 월지국 출신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이 최고본(最古本)이다. 인도에서 우란분재가 설행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우란분경』이 설해진 선조구제(先祖救濟)에 관한 내용의 근거가 되는 고사(古事)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에 담겨져 있다. 자라트카루(jaratkaru)라는 범행자(梵行者)는 고행으로 욕망을 굴복시켰는데, 덕은 높고 그 서원은 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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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분절의 전래우란분절은 인도에 뿌리를 두면서 동아시아권 불교국에서 성행하여 불교신앙의 중심을 이루어 왔을 뿐만 아니라, 각국의 불교문화를 형성·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중국에서는 양(梁)나라 무제(武帝) 천감(天監) 15년(516)에 성립된 『경율이상(經律異相)』에 ‘목련이 어머니를 위해 우란분을 행했다’는 기록과, 양 무제 대동(大同) 4년(538)에 ‘양무제가 동태사(同泰寺)에 행차하여 우란분재를 베풀었다’는 『불조통기(佛祖統紀)』의 기록으로 보아 이미 6세기경에 거국적 규모의 행사로 자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승려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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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우란분절우리나라의 우란분재 설행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예종(睿宗) 원년 7월 조(1106)이다. 계묘일에 장령전에서 우란분재를 올려 숙종의 명복을 빌고 갑진일에 또 명망있는 승려를 불러 『목련경』을 강의하였다. 당시 행해진 우란분재는 예종(睿宗)이 장령전(長齡殿)에서 숙종(肅宗)의 명복과 천도를 빌기 위해 베풀어졌다. 이는 우란분재가 지니고 있는 재(齋)의 성격에 부합한다. 또한 우란분재를 봉행한 다음 날 명승(名僧)을 초청하여 『목련경(目蓮經)』을 강설하게 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고려 사회에서 『목련경』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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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우란분절고려시대에 성황을 이룬 우란분재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억불 정책으로 인해 음성화되었다. 그러나 효행(孝行) 윤리를 주축으로 하는 우란분재는 민중들에게 깊이 뿌리 내릴 수 있었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우란분재가 성행했음을 여러 기록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태조대에 흥천사(興天寺)에서 우란분재를 베풀었으며 세조대에도 우란분재를 설행한 기록이 있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지금 승도(僧徒)가 초혼(招魂)한다고 핑계하고 도성인(都城人) 부녀(婦女)를 길거리에서 모으니, 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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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우란분절조선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져 오던 우란분절은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불교계 침체도 겪지만, 이미 세시풍속으로 자리매김하여 지속적으로 설행된다. 이 과정에서 우란분절의 천도 대상이 7대 부모에 한정되지 않고, 무주고혼(無主孤魂)이나 순국열사 등으로 확대되어 합동천도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근대에 발행된 신문과 잡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10년 서울 시내 동문 밖 사찰에 수천 명이 운집한 가운데 우란분절이 설행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나서 세시풍속을 금하는 시책에 따라 변화를 겪는... -
현대 우란분절우란분절 설행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여러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먼저 우란분절의 설행 기간이다. 우란분절 당일, 전후 1일을 포함하여 3일, 전후 3일을 포함하여 7일 동안 행해지던 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49일 동안 설행하고 있다. 음력 7월 15일을 회향일로 하고, 49일 전부터 7일마다 재를 올리는 칠칠재로 진행되며 입재부터 회향까지 총 8회 봉행된다. 음력 5월 26일 입재를 시작으로, 6월 2일 초재, 9일 2재, 16일 3재, 23일 4재, 30일 5재, 7월 7일 6재, 14일 7재(회향)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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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의 우란분절1. 수덕사 소개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다. 또한 대한불교조계종의 6대 총림 중 하나이다.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 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수덕사는 관련 문헌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나 다행히도 충렬왕 34년(1308)에 건축된 대웅전과 통일신라말기 양식을 모방한 삼층석탑, 수덕사 출토 고려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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