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마다 돌아오는 윤달에 맞추어 7교구 본사 및 말사 그리고 대중들과 같이 간월암에서 생전예수재 및 수륙대재를 봉행한다. 이때 간월암 주차장에 단을 조성하여 49일동안 재를 준비하여 회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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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의 정의수륙재는 ‘천지명양수륙재의’ 또는 ‘법계성범수륙무차평등보도대재승회’라고 한다. 여기에서 드러나듯이, 법계(法界)와 천지(天地), 명양(冥陽)과 수륙(水陸)에서 사성과 육범[聖凡]이 모두 어우러져 차별없이[無遮] 평등(平等)하게 어우러져 널리 제도[普度]하고 정각(正覺)을 이루고자하는 수승한 법회[勝會]이다. 일반적으로는 좁은 의미로 “물과 육지를 헤매는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례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수륙재는 이와 같은 목적을 넘어 설행됨을 밝히고 있다.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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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의 경전적 기원수륙재는 『석문정통(釋門正統)』에, 양무제가 아난과 면연귀왕(面然鬼王)이 나오는 경전을 자세히 살펴보고 의문을 짓고 금산사에서 설행하였다고 한다. 이 경전은 『불설구발염구아귀다라니경(佛說救拔焰口餓鬼陀羅尼經)』과 그 이역경인 『불설구면연아귀다라니신주경(佛說救面然餓鬼陀羅尼神呪經)』이다. 그러므로 이 두 경전은 수륙재의 소의경전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전의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밤 아난의 꿈에 아귀가 나타나 음식을 구하였다. 이에 아난이 아귀가 일러 주는 대로 아귀와 바라문 선인에게 음식을 베풀었다. 이 설화가 수... -
고려 수륙재의 역사우리나라에서 수륙재가 설행된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첫째는 팔관회가 수륙재라는 설이다. 통일신라 진흥왕 33년(572) 10월에 외사(外寺)에서 전사한 사졸(士卒)들을 위해 7일간 설행된 팔관연회(八觀筵會)가 그것이다. 위령제가 수륙재의 성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무차대회가 수륙재라는 설이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공신당을 설치하여 무차대회를 열어 상례화한 것이다. 이들 설은 팔관연회와 무차대회의 성격과 수륙재와의 관계가 해명되어야 한다. 수륙재에 대한 직접적인 사료로는 고려 광종 19년(968)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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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륙재의 역사사료상으로 볼 때 수륙재는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보다는 오히려 조선시대에 더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건국 초에는 국가차원에서 왕조 교체기의 혼란한 민심을 안정시키고, 권좌를 위해 살상을 했던 그들의 죄를 씻기 위한 방편으로 수륙재에 관심을 기울였다. 태조 4년(1395) 2월에 개국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고려 왕씨를 비롯한 군신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관음굴(觀音窟), 현암사(見岩寺), 삼화사(三和寺)에서 수륙재를 베풀었다. 매년 2월 15일과 10월 14일, 연중 두 차례에 걸쳐 설행을 하는 것으로 제도화하였다. 이듬해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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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수륙재의 역사고려부터 조선전기까지 국행의례로서 수륙재가 주로 설행되었으나,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불교 신행이 제한되면서 사찰 중심의 수륙재가 종문(宗門)이나 일가(一家)를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이전 시기의 의례 전통을 계승하여 망자(亡者)를 추천(追薦)하는 사십구재(四十九齋) 형식의 수륙재가 거행되었다. 더욱이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이나 자연재해, 전염병, 기근 등 사회혼란 속에서 백성을 위무하고 치유하고자 공익적 목적에서 수륙재가 자주 설행되었다. 이를 방증하듯이 수륙재를 여법하게 준행하기 위하여 각종 법식(法式)과 재차(齋次)를... -
현대 수륙재의 역사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사회 혼란 속에서 불교의례 명맥이 희미하게 이어져 왔다. 신문기사 등 파편적인 기록을 통해 수륙재 전통이 점점이 이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전문학술영역에서 수륙재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불교학, 역사학, 민속학, 서지학, 미술사학, 음악학 등 유관 학문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되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로는 수륙재의 문화유산적 가치에 주목하면서 현재 거행되고 있는 수륙재에 대한 사례 연구가 크게 진척되었다. 나아가 수륙재가 지니는 공익성, 역사성, 예술성 등이 평가되... -
수륙재 설행 개요1. 수륙재 설행 개요 우리나라 수륙재 의례문은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가 대표적이다. 이 세 본은 오늘날 수륙재 설행의 소의의례로 삼고 있으며, 대례(大禮), 중례(中禮), 소례(小禮)라고 한다. 여기에 실제 의례문에는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 『자기문절차조열(仔夔文節次條例)』, 『천지명양수륙잡문』,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 『작법귀감(作法龜鑑)』, 『석문의범(釋門儀範)』 등에 근거하여 재차를 보완하여 구성하고 있다. 대례는 『법계성... -
예수재의 정의예수재(預修齋)는 살아 있는 동안에 스스로 미리[預, 豫] 자신의 공덕을 닦는[修] 재(齋)를 지내 죽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자행의례(自行儀禮)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재는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薦度齋)인데 반해 예수재는 살아있을 때 자기 자신을 위해 공덕을 쌓는 재라는 점에서 독특한 의례이다. 살아 있을 때 지내기 때문에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라고도 하고, 칠칠재로 지내므로 예수칠재(預修七齋)라고도 한다. 사료에 따르면, 주로 예수재라 일컬었으며, 기암법견(奇巖法堅, 1552-1634)의... -
예수재의 경전적 근거예수재는 일반적으로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이하 『시왕경』)과 『불설수생경』, 『불설지장보살발심인연시왕경(佛說地藏菩薩發心因緣十王經)』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다. 조선시대 간행본을 보면, 『불설수생경』과 『불설예수시왕생칠경』이 합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경전이라 하지만 중국에서 찬술한 것이다. 지장보살과 명부신앙, 사후의 야마천(염라왕)은 인도에서 기원하고 있으나, 명도의 심판관은 중국에서 발생한 도교의 시왕신앙(十王信仰)을 불교에서 수용하면서 비롯되었다. 『시왕경』의 원제목은 『불설염라왕수기사중역수... -
예수재의 역사적 기원예수재는 지장신앙과 시왕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장신앙은 크게 세 차례에 걸쳐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에 입각한 현세수호(現世守護) 신앙, 둘째는 『지장보살본원경』과 관련된 사후구제(死後救濟) 신앙, 셋째는 『시왕경』과 결합한 명부심판(冥府審判) 신앙이다. 첫째는 인도를 중심으로 알려졌다. 둘째와 관련하여, 『지장보살본원경』에는 부처님이 지장보살에게 번뇌와 죄업으로 고통 받는 오탁악세(五濁惡世)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라는 분부를 내린다. 이에 지장보살은 육도에서 윤회하는 중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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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근현대까지 예수재의 역사우리나라에서 예수재의 시원은 고려시대 혹은 조선중기로 보고 있다. 고려시대로 보는 견해는 예수재의 근거가 되는 명부 십대왕에 대한 신앙인 시왕신앙(十王信仰)이 고려시대부터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 고종 33년(1246)에 해인사에서 간행된 『불설예수시왕생칠경』(국보 제206-10호)에 간행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조선중기로 보는 견해는 세종대(재위 1418-1450)와 중종대(재위 1506-1544)의 시왕재(十王齋)나 소번재(燒幡齋)와 관련한 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다. 1518년 소번재에서는 시왕상을 설치하고 전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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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재 설행 개요현행 예수재의 대부분은 윤달이 든 해에 설행된다. 하지만 예수재의 적극적인 복원과 전승을 위하여 매년 설행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봉은사와 청련사의 예수재가 그렇다. 매년 설행되는 예수재의 경우 49재와 같은 칠칠재 형식으로 치러진다. 사람이 죽으면 칠칠일 동안 중유(中有)에 머물다가 다음 생을 받는다는 관념에 따라 이 기간 동안 공덕을 짓는 것이다. 망자를 위한 천도재를 칠칠재로 봉행하듯이 산 자를 위한 예수재 역시 칠칠재로 설행한다는 점이 의미 있다. 예수재는 미리 치르는 자신을 위한 천도재이며, 자신의 죽음을 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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