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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암

극락암(極樂庵)은 1920년 창건된 비구니 도량이다.[1]비구니 상옥(相玉)이 1920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상욱 스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2002년 건립된 〈덕숭산 수덕사 사적비(德崇山修德寺事蹟碑)〉에 따르면, 벽초 경선(碧超鏡禪, 1899~1986) 스님이 주지가 된 후,[2]벽초 경선 스님은 만공(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의 법맥을 이어, 1940년부터 30여 년간 수덕사 주지를 지냈다.1968년 소실된 극락암을 인법당(人法堂)으로 복원하였다.[3]一九六六年 見性庵을 修德寺 西쪽으로 移轉하고 一九六八年 燒失된 極樂庵을 人法堂으로 復元하였으며…一九八六年 三月 世壽 八十七歲 法臘 八十歲로 入寂하였다(『덕숭총림 수덕사 본말사 문헌집 상』, 23쪽). 지금 극락암은 수덕사 중심 경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위치에 동향으로 자리하며, 극락정사(極樂精舍)와 요사(寮舍)[4]요사(寮舍) 건물은 현재 화장실로 사용하고 있다. 모두 2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극락정사는 2000년대 지은 단층 벽돌 건물이다. 벽돌을 쌓아 벽체를 세우고, 맞배지붕을 얹었다. 건물 전면에는 덕숭총림 제3대 방장을 지내신 원담 진성(圓潭眞性, 1926~2008) 스님 글씨의 〈극락정사(極樂精舍)〉 편액이 걸려 있다. 편액은 글씨를 도드라지게 양각(陽刻)한 뒤, 글씨에만 검은 칠을 한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극락정사 내부는 공간을 분리하여 예불을 위한 법당과 스님이 거처하는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법당에는 주불(主佛)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셨다. 관세음보살은 불단 가운데, 연화대좌 위에 앉은 좌상(坐像) 형식의 상(像)이다. 상은 머리에 채색된 화불(化佛)이 있는 보관(寶冠)을 썼고, 몸에 법의(法衣)는 두 번 겹쳐 걸쳐 양어깨를 덮었다. 배 앞에서 모은 두 손에는 정병(淨甁)을 올렸다. 이 〈관음보살좌상〉은 나무로 만든 상이고, 높이는 90.0㎝이다. 관세음보살 뒤에는 붉은 바탕에 금색 선[金泥]으로 그린 액자 형식의 〈불회도(佛會圖)〉가 걸려 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182.0㎝, 가로 182.0㎝이다. 그림 하단 중앙의 화기(畵記)에 따르면, 1997년 금어(金魚)[5]금어(金魚)는 단청이나 불화를 그리는 일에 종사하는 스님을 말한다. 임석정(林石鼎, 1924~2012) 스님과 제자 하경진(河景振, 1966년경~)이 그렸다. 법당 측면 벽에도 붉은 바탕의 금 선묘(線描)로 그린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와 〈신중도(神衆圖〉, 〈산신도(山神圖)〉가 걸려 있는데, 모두 〈관음보살좌상〉 뒷벽 그림으로 모셔진 〈불회도〉와 함께 제작된 작품이다. 이 세 점 모두 임석정 스님과 하경진이 그렸다. 이외에도 법당 안에는 현대에 만들어진 의식용 〈소종(小鐘)〉이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비구니 상옥(相玉)이 1920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상욱 스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 주석 2 벽초 경선 스님은 만공(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의 법맥을 이어, 1940년부터 30여 년간 수덕사 주지를 지냈다.
  • 주석 3 一九六六年 見性庵을 修德寺 西쪽으로 移轉하고 一九六八年 燒失된 極樂庵을 人法堂으로 復元하였으며…一九八六年 三月 世壽 八十七歲 法臘 八十歲로 入寂하였다(『덕숭총림 수덕사 본말사 문헌집 상』, 23쪽).
  • 주석 4 요사(寮舍) 건물은 현재 화장실로 사용하고 있다.
  • 주석 5 금어(金魚)는 단청이나 불화를 그리는 일에 종사하는 스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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