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도흡불망비(比丘尼道洽不忘碑)〉는 자연 암반을 비좌(碑座)로 삼고, 규형(圭形) 비신(碑身)을 꽂아놓은 형태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견성암선원 대공덕주 도흡니 불망비(見性庵禪院大功德主道洽尼不忘碑)’라고 세로로 글씨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망선옹사 비구니 정민 영가(亡先翁師比丘尼定敏靈駕)’, ‘망선은사 비구니 시○ 영가(亡先恩師比丘尼時○靈駕)’, ‘망부 안동권씨보광 영가(亡父安東權氏普光靈駕)’, ‘망모 문화류씨만덕화 영가(亡母文化柳氏萬德華 靈駕)’ ‘동왕극락상품지대원(同往極樂上品之大願)’이라고 새겨져 있다.
도흡(道洽) 스님은 1930년에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스님의 뜻을 따라 견성암(見性菴)을 중창한 스님이다. 견성암은 1908년 만공 선사가 창건했는데, 창건 당시에는 정혜사 동쪽에 지어진 초가집이었으며, 1930년에 도흡 스님이 중창했다. 이러한 도흡 스님의 공덕을 기리고자 문도에서 이 비석을 건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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