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암(見性菴)은 덕숭총림(德崇叢林)의 비구니 도량이자, 한국 최초의 비구니 선원이다. 수덕사(修德寺) 중심 경내에서 서쪽으로 약 250m 떨어져 있는 덕숭산(德崇山) 중턱에 동북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견성암에 전해지는 소장 전적은 권선문(勸善文)인 1964년 벽초 경선(碧超鏡禪, 1899~1986) 스님과 김일엽 스님(荷葉一葉, 1896~1971), 묘리 법희(妙理法喜, 1887~1975) 스님이 참여한 「총림불사동참문」, 1967년 벽초 스님이 참여한 「自願喜捨同參芳啣錄序(자원희사동참시주방함록서)」, 1968년 벽초 스님이 참여한 「수덕사호국총림창건권선문」, 1977년 「총림원 선방 불사 권선문」, 1980년 「덕숭산 견성암 총림 도로 확장 공사 권선문」등이 있고, 서적으로는 『불명경ᄎᆞᆷ희문』 권일,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 『불셜보살육도ᄒᆡᆼ경』 등이 있다.
먼저 1964년에 작성된 「총림불사동참문」은 견성암을 중창하는데 시주를 부탁하는 글이다. 이 권선문에는 벽초 스님과 일엽 스님, 법희 스님의 인장(印章)이 찍혀 있다. 내용은 금생(今生)에서 복을 짓는 것이 내생(來生)을 알 수 있고, 가장 크게 복을 짓는 것은 수도하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것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1967년 「自願喜捨同參芳啣錄序(자원희사동참시주방함록서)」는 견성암의 중창에 동참하길 바라는 분들의 성명을 남겨 후세에 크고 오랫동안 복덕을 남기라는 방함록에 벽초 선사의 말씀을 옮긴 글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사원 증축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백년천년 남아서 후세에까지 영향을 끼지고 있으니, 견성암의 중창에 참여하고 이름을 남겨 불전에 축원을 남기라는 뜻을 담았다.
1968년 「수덕사호국총림창건권선문」은 견성암의 중창에 자재가 부족하여 완성하기 힘들어 졌으니 전국 선남선녀들에게 권선을 부탁하는 벽초 스님의 말씀을 옮긴 글이다. 특히 글의 서두에 ‘불법을 닦는 것은 민족의 정기를 바로잡기 위함’이라고 하여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과 견성암의 창건에 도움을 주는 불자들에게 사원 건축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였다. 이 권선문은 당시 스님들이 각자 별도의 책자에 옮겨 적어서 전국의 블자들에게 권선을 다녀서 현재 전해지는 책만 30여 권이 된다.
1977년 「총림원 선방 불사 권선문」은 1964년 「총림불사동참문」을 본따서 작성하였다. 견성암의 내부 공사가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선남선녀들에게 권선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1980년 「덕숭산 견성암 총림 도로 확장 공사 권선문」은 견성암에 이르는 길이 협소하여 스님들과 대중들에게 많은 불편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넓히는 것에 대해 권선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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