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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암 신중도

〈신중도(神衆圖)〉는 불보살(佛菩薩)을 외호하고 불교를 지켜주는 신들[神衆]을 그린 불화이다. 지금 견성암 관음전(觀音殿)에는 2점의 〈신중도〉가 봉안되어 있는데, 한 점은 법당 전면 벽에, 다른 한 점은 오른쪽 벽에 봉안되어 있다. 두 점의 〈신중도〉 가운데, 오른쪽 벽에 봉안된 작품은 1925년 제작된 불화이다. 이 불화는 충남 연기군에 사는 인물 장(張)씨가 돌아가신 어머니 안(安)씨의 영가(靈駕)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화기(畵記)[1]불화를 조성할 당시 참여했던 사찰대중, 화원, 시주자 등과 불화를 조성하게 된 내력 등을 적은 기록. 대부분 불화의 아래쪽에 별도의 칸을 마련하여 기재한다. 끝에 ‘이 공덕으로 모든 중생이 극락국에 태어나 무량수불(無量壽佛)을 뵙고, 불도(佛道)를 성취하길 바란다’는 공덕게(功德揭)를 적고 있다. 불화 제작 불사(佛事)는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이 증명 비구(證明比丘)[2]증명은 삼장(三藏)과 선리(禪理)에 밝은 큰스님이 사찰의 법회나 불사 때 법대로 바르게 진행되도록 확인하고 감독하는 일.를 맡아 주도하였으며, 참여한 화승(畵僧)은 호은(湖隱, 1882~1954) 등 4명이다. 초를 내는 일은 몽화(夢華, 20세기 전반)·경인(敬仁,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내순(來淳, 생몰년 미상) 스님이 하였고, 호은 스님은 금어(金魚)[3]불화를 그리는 사람. 금어라는 명칭은 ‘부처님이 극락의 못에 금어(金魚)가 없는 것으로 보고, 부처님을 현세에 묘사하는 자가 있으면 내세에 극락의 금어로 환생시켜주겠다.’고 약속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로서 제작을 총괄하였다. 이 〈신중도〉는 전체크기 세로 107.5㎝ 가로 120.0㎝의 액자 형식으로 제작되었으며, 화면(畫面)에는 총 17명의 인물이 표현되었다. 화면 한 가운데 위태천신(韋䭾天神), 화면 위쪽의 왼쪽과 오른쪽에 대범천왕(大梵天王)과 제석천왕(帝釋天王)을 나란히 선 구도로 배치한 뒤 이를 중심으로 문·무관(文武官) 모습의 선신(善神)과 산신(山神), 천인(天人) 등의 권속(眷屬)을 그려 넣었다. 법당 전면 벽에 봉안된 〈신중도〉는 2004년 제작하여 봉안한 불화이다. 화기에 기록된 시주자는 한 가족 5명이다. 이 불화는 가로 길이가 훨씬 더 긴 횡액자 형식으로 제작되었으며, 화면에 표현된 인물은 모두 33명이다. 1925년에 제작된 〈신중도〉와 동일하게 위태천신, 대범천왕, 제석천왕을 중심으로 권속을 배치한 형식이지만, 무관 모습의 선신과 천인의 수가 늘어났고 일·월 양대천자(日月兩大天子)와 용왕(龍王) 등의 권속이 더 표현되었다. 이 밖에도 관음전 법당 안에는 〈관음보살좌상(觀音菩薩坐像)〉과 〈탄생불입상(誕生佛立像)〉을 비롯하여 〈아미타오존도(阿彌陀五尊圖)〉,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1931), 〈산신도(山神圖)〉, 불교 의식을 위한 〈소종(小鐘)〉이 봉안되어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불화를 조성할 당시 참여했던 사찰대중, 화원, 시주자 등과 불화를 조성하게 된 내력 등을 적은 기록. 대부분 불화의 아래쪽에 별도의 칸을 마련하여 기재한다.
  • 주석 2 증명은 삼장(三藏)과 선리(禪理)에 밝은 큰스님이 사찰의 법회나 불사 때 법대로 바르게 진행되도록 확인하고 감독하는 일.
  • 주석 3 불화를 그리는 사람. 금어라는 명칭은 ‘부처님이 극락의 못에 금어(金魚)가 없는 것으로 보고, 부처님을 현세에 묘사하는 자가 있으면 내세에 극락의 금어로 환생시켜주겠다.’고 약속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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