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암(見性菴)은 덕숭총림(德崇叢林)의 비구니 도량이자, 한국 최초의 비구니 선원이다. 수덕사(修德寺) 중심 경내에서 서쪽으로 약 250m 떨어져 있는 덕숭산(德崇山) 중턱에 동북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견성암 한가운데, 기와를 올린 2층의 현대 건축물은 견성암 본래 터[1]지금의 환희대 자리이다.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길 때 지은 건물이다. 건립 당시 수덕사 방장(方丈) 벽초 경선(碧超鏡禪, 1899~1986) 스님과 김일엽(荷葉一葉, 1896~1971) 스님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966년 기공식을 봉행하고[2]1966년 묘리 법희(妙理法喜, 1887~1975) 스님이 초대 비구니총림원장으로 추대되었다.1967년 견성암 신축 기금 마련을 위한 포교극 〈이차돈의 사(死)〉를 국립극장에서 상연하였다. 〈이차돈의 사〉는 춘원 이광수(李光洙, 1892~1950)의 작품을 일엽 스님이 각색하고, 일엽 스님의 손상좌 월송(月松, 1956~) 스님이 직접 출연한 연극이다. 벽초 스님과 일엽 스님의 노력은 당시의 권선문(勸善文)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3]글을 모르는 벽초 스님의 구술을 채록한 것이라는 〈자원희사동참시주방함록서〉와 근대기 여성 문학가로 유명한 일엽 스님이 지었다는 〈총림불사동참문〉이 현재까지 견성암에 전한다.
건물 전면 외벽에는 견성암 비구니 선원에 각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 글씨의 〈견성암(見性菴)〉 편액(1939)이 걸려 있다. 건물 내부는 복도식이고, 1층 중앙에 선방 2층 중앙에 법당이 자리한 구조이다.
1층 선방 앞에는 외벽에 걸린 만공 스님 글씨의 〈견성암〉 편액과 동일한 편액이 걸려 있다. 편액 건너편 선방 안에는 〈용상방(龍象榜)〉[4]용상방은 안거 때 또는 큰 불사가 있을 때 스님들이 각자 맡은 일[소임(所任)]과 법명을 적어놓은 것으로 벽에 걸어 둔다., 〈세계일화(世界一花)〉[5]세계일화는 ‘세계는 한 송이의 꽃’이라는 뜻이며, 모든 것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를 의미한다. 액자, 흑백사진의 〈만공 스님 진영〉 액자가 벽에 걸려 있고, 스님들의 발우 등을 보관하는 벽장이 있다. 안거 기간 동안 선방에서 참선 정진하는 시간은 오전 2회, 오후 2회이다[6]오전은 새벽 예불 후~5시, 8시~10시이고, 오후는 2시~4시와 여름일 경우 7시~9시, 겨울일 경우 6시~9시이다. . 견성암 선방은 김일엽 스님을 비롯하여 묘리 법희(妙理法喜, 1887~1975), 만성(萬性, 1897~1975), 월조 지명(月照智明. 1921~2013), 숭심 명수(崇心明洙, 1925~2013) 등 대표적인 비구니 선지식(善知識)들이 안거(安居) 수행했던 곳이며, 비구니 선풍의 근원으로 위상이 높다.
2층으로 올라가면, 〈칠근루(七斤樓〉 현판(1939)을 제일 먼저 만난다. 이 현판은 만공 스님께서 수행자들에게 시줏물 일곱 근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열심히 수행하라는 의미로 써주셨다고 한다. 2층 법당에는 현대에 제작된 〈석가모니불좌상(釋迦牟尼佛坐像)〉과 〈백의관음보살좌상(白衣觀音菩薩坐像)〉, 조선 말에 제작된 〈관음보살좌상(觀音菩薩坐像)〉이 봉안되어 있다. 이 세 존상 뒷벽에는 부처님의 설법 모임[佛會] 장면을 고부조 형식으로 제작한 작품이 봉안되어 있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본래 봉안되어 있던 액자 형식의 〈후불도(後佛圖)〉(1998)를 떼어냈더니 드러났다고 한다. 본래 봉안하였던 불화는 현재 전면 벽 오른쪽에 봉안되어 있는데, 화기(畵記)에 견성암 후불탱화로 봉안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후불도〉와 전면 벽 왼쪽에 봉안되어 있는 〈신중도(神衆圖〉)(2010)는 금어(金魚) 조정우(曺廷宇, 1943~2012)[7]조정우는 근대기 계룡산 화파를 형성한 금호 약효(錦湖若效, 1846~1928) 스님의 4세 문도(門徒)이자, 금용 일섭(金容日燮, 1900~1975)의 문도이다.에 의해 제작되었다. 법당에 있는 소종(小鐘)은 죽은 이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발원(發願)하며 1975년 제작한 작품이다.
관련주석
- 주석 1 지금의 환희대 자리이다.
- 주석 2 1966년 묘리 법희(妙理法喜, 1887~1975) 스님이 초대 비구니총림원장으로 추대되었다.
- 주석 3 글을 모르는 벽초 스님의 구술을 채록한 것이라는 〈자원희사동참시주방함록서〉와 근대기 여성 문학가로 유명한 일엽 스님이 지었다는 〈총림불사동참문〉이 현재까지 견성암에 전한다.
- 주석 4 용상방은 안거 때 또는 큰 불사가 있을 때 스님들이 각자 맡은 일[소임(所任)]과 법명을 적어놓은 것으로 벽에 걸어 둔다.
- 주석 5 세계일화는 ‘세계는 한 송이의 꽃’이라는 뜻이며, 모든 것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를 의미한다.
- 주석 6 오전은 새벽 예불 후~5시, 8시~10시이고, 오후는 2시~4시와 여름일 경우 7시~9시, 겨울일 경우 6시~9시이다.
- 주석 7 조정우는 근대기 계룡산 화파를 형성한 금호 약효(錦湖若效, 1846~1928) 스님의 4세 문도(門徒)이자, 금용 일섭(金容日燮, 1900~1975)의 문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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