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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대 경허 성우 진영

금선대(金仙臺) 인법당 내부 정면 벽에 두 점의 진영(眞影)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정면 벽을 바라봤을 때, 왼쪽에 있는 그림이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9~1912) 스님의 모습을 그린 진영이다. 그림에서 스님은 푸른 방석 위에 회색 장삼(長衫)과 붉은색 가사(袈裟)를 걸치고 정면을 향해 앉았다. 오른손은 지팡이[錫杖]를 쥐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 금빛으로 ‘경허당대선사성우진영(鏡虛儅大禪師惺牛眞影)’이라고 그림 제목을 쓰고, 아래에 검은 글씨로 ‘설산 최광익 그림(雪山 崔光益 寫)’이라고 그림을 그린 작가의 호와 이름을 기록하였다. 경허 스님은 근대 이행기에 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끈 선지식(善知識)이다. 전라북도 전주 출신이며, 출가 전 이름은 송동욱(宋東旭)이다. 경기도 광주 청계사(淸溪寺)의 계허(桂虛, 생몰년 미상) 스님을 은사(恩師)로 출가하였다. 불교 경론뿐 아니라 유서(儒書)와 노장(老莊) 등을 두루 섭렵하고, “나귀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1]려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馬事到來)는 화두를 참구하던 중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2]도우 무비공처(到牛無鼻孔處)는 말을 듣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제자로 만공 월면·혜월 혜명(慧月慧明, 1862~1937)·침운(枕雲, 생몰년 미상)·수월 음관(水月音觀, 1855~1923)·한암 중원(漢岩重遠, 1876~1951) 등이 있다. 이 그림은 제자 만공 스님(滿空月面, 1871~1946)이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경허 선사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초상화가로 활동하던 설산 최광익(崔光益, 1891~1970)이 그렸다. 섬세한 붓 터치로 사실적이며 입체감 있게 인물 묘사를 한 점이 특징적이다. 그림은 액자 형식으로 표구되었으며, 크기는 세로 127.5㎝, 가로 88.2㎝이다. 그림 왼쪽 상단에는 금빛 글씨로 경허 선사께 올리는 글[影讚]을 쓰고, ‘제자 만공 월면 삼가 찬합니다(弟子滿空月面敬讚)’라고 적었다. 제일 끝에 ‘세존응화이구육삼년병자납월팔일(世尊應化二九六三年丙子臘月八日)’이라고 글을 쓴 날을 기록하여, 1936년 12월 8일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원문
鏡虛儅大禪師惺牛眞影 崔光益 寫 鏡虛本無鏡 惺牛曾非牛 非無處處路 活眼酒與色 弟子滿空月面敬讚 世尊應化二九六三年丙子臘月八日
번역문
거울이 비었으니 본래 거울이 없고 소를 깨달았으니 이미 소가 아니네 거울도 없고 소도 아닌 곳곳마다 밝은 눈은 술과 색(色)이로구나 제자 만공 월면 삼가 찬합니다. 세존응화 2963년(1936) 병자 12월 8일
관련주석
  • 주석 1 려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馬事到來)
  • 주석 2 도우 무비공처(到牛無鼻孔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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