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사(轉月舍)는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께서 말년을 보내신 요사(寮舍) 건물이다. 수덕사 중심 영역의 북동쪽 산속에 남동향으로 자리하며,[1]정혜사로부터는 북동쪽으로 약 350m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사찰: 전통사찰 전수 조사보고서』, 2018). 〈전월사(轉月舍)〉 편액이 걸린 건물을 포함하여 모두 2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덕숭산 수덕사 사적비(德崇山修德寺事蹟碑)〉(2002)에 따르면, 전월사는 1940년 만공 스님의 손상좌 벽초 경선(碧超鏡禪, 1899~1986) 스님이 세운 것이다.[2]『덕숭산 정혜사(德崇山定慧寺)』에 실린 「산내 말사 속암 약사(山內末寺屬庵略史)」(시기미상)에는 견성암에서 동쪽으로 약 150m 산허리 위에 동향하여 마치 제비집처럼 매달려 있으며, 1938년에 지어진 만공 스님 최후의 요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1940년에 벽초 스님이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만공 스님께서 국권회복을 위한 1000일 기도를 마친 뒤 간월암(看月庵)에서 전월사로 돌아온 지 3일 만에 광복 소식을 듣고, 기쁨에 그 자리에서 뜰에 떨어져 있는 무궁화 꽃잎으로[槿花筆] ‘세계일화(世界一花)’[3]세계일화(世界一花)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세계는 한 송이의 꽃’이란 말이다. 만공 스님께서 ‘온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다’라는 가르침을 주시며, 온 세계 만민의 평화를 발원한 것을 의미한다. 네 글자를 쓰셨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금 전월사 경내에는 좌선대(坐禪臺)라고 불리는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자리가 협소하여 한 사람만이 앉을 만한 낭떠러지에 달린 자연 암반인데, 만공 스님께서 참선(參禪)하셨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전월사〉 편액이 걸린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홑처마 팔작지붕을 얹어 지은 한식 목조 건물로 2000년대 건립되었다. 지금 걸려 있는 편액은 갈색 바탕에 흰 글씨로 되어 있지만, 본래는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제작되었다. 글씨는 만공 스님의 친필이며, 편액의 크기는 세로 28.0㎝ 가로 104.2㎝이다. ‘전월사(轉月舍)’라는 이름은 ‘허공의 둥근 달을 굴리는 집’이란 의미로 붙여졌다. 이 건물은 현재 내부 공간을 분리하여 예불을 위한 법당과 스님이 거처하는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법당에는 아미타 부처님[阿彌陀佛坐像]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불회(佛會) 장면을 그린 〈후불도(後佛圖)〉를 봉안하고 있다. 법당 측면 벽에는 〈만공 대선사 월면의 영(滿空大禪師月面之影)〉이란 제목의 만공 스님 진영 작품이 걸려 있다. 그림에 기록된 관지(款識)에 1931년 음력 2월 12일[百花生日] 정재 최우석(鼎齋 崔禹錫, 1899~1965)이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건물 1동은 정면 2칸, 측면 1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을 얹은 전통목구조 방식으로 지어졌으며, 현재 창고 겸 화장실로 사용하고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정혜사로부터는 북동쪽으로 약 350m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사찰: 전통사찰 전수 조사보고서』, 2018).
- 주석 2 『덕숭산 정혜사(德崇山定慧寺)』에 실린 「산내 말사 속암 약사(山內末寺屬庵略史)」(시기미상)에는 견성암에서 동쪽으로 약 150m 산허리 위에 동향하여 마치 제비집처럼 매달려 있으며, 1938년에 지어진 만공 스님 최후의 요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1940년에 벽초 스님이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 주석 3 세계일화(世界一花)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세계는 한 송이의 꽃’이란 말이다. 만공 스님께서 ‘온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다’라는 가르침을 주시며, 온 세계 만민의 평화를 발원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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