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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사 치성광여래도·지장시왕도

정혜사(定慧寺)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와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는 정혜사 관음전(觀音殿)에 봉안된 불화이다. 〈치성광여래도〉는 관음전 내부 정면 벽 오른쪽, 즉 중앙에 걸린 〈노사나불회도(盧舍那佛會圖)〉(1943) 오른쪽에 액자 형식으로 봉안되어 있다. 액자의 크기는 세로 101.0㎝, 가로 131.0㎝이다. 이 불화는 그림 아래쪽에 적힌 기록[畵記]에 따르면, 1906년 수화승(首畵僧) 금호 약효(錦湖若效, 1846~1928)와 제자 몽화(永惺夢華, 20세기 전반)와 성엽(香庵性曄,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이 그린 뒤 금선대(金仙臺)에 봉안한 칠성탱(七星幀)[1]16세기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의 불화명은 〈치성광회상(熾盛光會上)〉 등으로 기록되었고, 칠성(七星)이 신앙에서 부각되어 칠성여래(七星如來)가 등장하였던 16세기 중반에도 불화명은 〈치성광회(熾盛光會)〉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후기 〈칠성탱(七星幀)〉이라는 화명(畵名)이 불화의 화기(畵記)에 기록되어 있더라도, 본존(本尊)의 불명(佛名)에 따라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라고 명명해야 한다.이다. 시주자(施主者)들은 장수·부귀·복·번창을 바라고, 살아서는 편안하게 탈 없이 지내며 죽어서는 극락에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주하였다. 〈치성광여래도〉는 성스러운 별에 소원을 비는 신앙에서 비롯되었으며,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본존(本尊)으로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칠성여래(七星如來)·칠원성군(七元星君) 등 하늘에 있는 해·달·별을 상징하는 존격을 주요 도상(圖像)으로 삼는다. 정혜사 〈치성광여래도〉에서 치성광여래는 특징적 지물(持物)인 금륜(金輪) 없이, 낮은 대좌에 가부좌(跏趺坐) 한 모습으로 중앙에 표현되었고, 그 양옆에 서 있는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도 해와 달을 나타내는 도상이 표현되지 않았다. 일광·월광 보살 옆에는 능형 광배(菱形光背)로 공간을 구획한 뒤, 6성(星)과 칠원성군을 그려넣었다. 윗부분에는 이마가 높고 넓은 노인으로 표현된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과 자미북극대제(紫微北極大帝), 동자(童子)·동녀(童女) 등이 표현되었다. 〈지장시왕도〉는 정면 벽 왼쪽에 액자 형식으로 봉안되어 있으며, 액자의 크기는 세로 140.0㎝ 가로 211.5㎝이다. 〈노사나불회도〉와 비슷한 톤의 중간 색조를 넓은 면적에 사용하여, 〈노사나불회도〉와 통일감을 주고 있다. 화면(畫面) 중앙에는 석장(錫杖)을 들고 있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앉아 있고, 그 왼쪽과 오른쪽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합장하고 서 있다. 주위에는 시왕(十王)과 소머리[牛頭]·말머리[馬頭]를 한 옥졸(獄卒), 판관(判官), 사자(使者) 등의 권속들이 자리한다. 화면 아랫부분에 화기를 기록하는 란은 마련되었으나, 별도의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다. 현대에 제작한 작품으로 추정한다. 관음전은 〈관음보살좌상(觀音菩薩坐像)〉(1939년경)을 주존(主尊)으로 〈노사나불회도〉, 〈치성광여래도〉, 〈지장시왕도〉, 〈신중도(神衆圖)〉(1925) 등의 불화 4점과 〈소종(小鍾)〉(1940)이 봉안되어 있는 법당이다.
관련주석
  • 주석 1 16세기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의 불화명은 〈치성광회상(熾盛光會上)〉 등으로 기록되었고, 칠성(七星)이 신앙에서 부각되어 칠성여래(七星如來)가 등장하였던 16세기 중반에도 불화명은 〈치성광회(熾盛光會)〉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후기 〈칠성탱(七星幀)〉이라는 화명(畵名)이 불화의 화기(畵記)에 기록되어 있더라도, 본존(本尊)의 불명(佛名)에 따라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라고 명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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