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사(定慧寺) 〈관음보살좌상(觀音菩薩坐像)〉은 1935년 중창된 관음전(觀音殿)의 본존(本尊)으로 봉안된 상(像)이다.
이 〈관음보살좌상〉은 한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 김복진(金復鎭, 1901~1940)[1]김복진(金復鎭, 1901~1940)은 1925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한 최초의 조선인 졸업생이다. 호는 정관(井觀)이며, 한국에 서양의 사실주의 조각 기법을 최초로 도입한 근대 조각가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RF) 결성을 주도하는 등 사회주의 사상 운동에 앞장서다 5년 반가량(1928.8~1934.2/ 1934.12~1935.2) 수감되었다. 남아 있는 작품은 50여 점 정도로 많지 않다. 불상(佛像) 작품은 모두 10점이 확인되었으나, 현존하는 작품은 공주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新元寺少林院石膏彌勒如來立像)〉(1935), 김제 〈금산사 석고미륵여래입상(金山寺石膏彌勒如來立像)〉(1936), 예산 〈정혜사 석고관음보살좌상〉(1939년경) 3점이다. 이밖에 기록으로 확인되는 불상 작품은 다음과 같다.
제15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작 〈불상 습작〉(1936),
서울 〈영도사 석가모니불입상(永導寺釋迦牟尼佛立像)〉(1936, 석고),
조선미술원 낙성 기념 소품전 출품작 〈불상〉(1937),
보은 〈법주사(法住寺) 미륵불입상)〉(1939년 착수, 시멘트),
청주 〈용화사(龍華寺) 미륵불입상〉(1940년 착수),
김용진(金容鎭, 1878~1968) 소장 〈관세음(觀世音)〉(1930, 나무, 유작전(遺作展) 출품작),
김형원(金炯元, 1900~미상) 소장 〈관세음〉(1937, 석고, 유작전 출품작),
이 중 법주사와 용화사 상(像)은 조성 중 요절하여 미완으로 남긴 작품이다.의 작품이다. 상은 근대에 불상의 재료로 새롭게 등장한 석고로 만들어졌으며, 현존하는 김복진 불상 최후의 작품이다. 상 제작 당시 옆에서 거들었다는 원담 진성(圓潭眞性, 1926~2008) 스님의 증언에 따르면,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이 주도한 불사(佛事)에 김수곤(金水坤, 1873~1950)이 시주하여 1939년경 청주 사람 김복진이 만들었다. 또 관음전의 편액 글씨는 김수곤의 딸 김진민(金瑱珉, 1912~1991)이 썼다고 한다.
상은 연화대좌 위 가부좌(跏趺坐)하고 머리에는 화불(化佛)이 봉안된 보관(寶冠)을 썼으며, 손에는 정병이 올려진 연꽃 줄기를 들고 있다. 상의 전체 높이는 76.0㎝이고, 전체 너비는 49.0㎝이다. 이 〈관음보살좌상〉은 조선 후기 불상의 형식과 양식을 충실히 재현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좌 역시 상과 함께 제작된 김복진의 석고 작품이다. 대좌의 평면 형태는 가로 길이가 더 긴 타원형이고, 높이는 29.0㎝이다.
〈관음보살좌상〉의 왼쪽에는 현대 작품으로 보이는 작은 상이 불단 위에 봉안되어 있다. 이 상은 왼손에 병을 들고 오른손에는 염주를 잡고 있는데, 손에 든 물건과 걸치고 있는 옷이나 장신구 등으로 볼 때 보살상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관음전 내부는 〈관음보살좌상〉 뒷벽에 봉안된 〈노사나불회도(盧舍那佛會圖)〉(1943)와 〈노사나불회도〉 양쪽에 걸려 있는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1906)·〈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현대 추정), 오른쪽 측면 벽에 봉안된 〈신중도(神衆圖)〉(1925) 등 불화 4점이 불단을 갖추고 봉안된, 예불 의식을 치를 수 있는 법당으로 꾸며져 있다. 법당 안에는 예불 의식에 사용되는 〈소종(小鍾)〉(1940)도 봉안되어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은 1925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한 최초의 조선인 졸업생이다. 호는 정관(井觀)이며, 한국에 서양의 사실주의 조각 기법을 최초로 도입한 근대 조각가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RF) 결성을 주도하는 등 사회주의 사상 운동에 앞장서다 5년 반가량(1928.8~1934.2/ 1934.12~1935.2) 수감되었다. 남아 있는 작품은 50여 점 정도로 많지 않다. 불상(佛像) 작품은 모두 10점이 확인되었으나, 현존하는 작품은 공주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新元寺少林院石膏彌勒如來立像)〉(1935), 김제 〈금산사 석고미륵여래입상(金山寺石膏彌勒如來立像)〉(1936), 예산 〈정혜사 석고관음보살좌상〉(1939년경) 3점이다. 이밖에 기록으로 확인되는 불상 작품은 다음과 같다. 제15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작 〈불상 습작〉(1936), 서울 〈영도사 석가모니불입상(永導寺釋迦牟尼佛立像)〉(1936, 석고), 조선미술원 낙성 기념 소품전 출품작 〈불상〉(1937), 보은 〈법주사(法住寺) 미륵불입상)〉(1939년 착수, 시멘트), 청주 〈용화사(龍華寺) 미륵불입상〉(1940년 착수), 김용진(金容鎭, 1878~1968) 소장 〈관세음(觀世音)〉(1930, 나무, 유작전(遺作展) 출품작), 김형원(金炯元, 1900~미상) 소장 〈관세음〉(1937, 석고, 유작전 출품작), 이 중 법주사와 용화사 상(像)은 조성 중 요절하여 미완으로 남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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