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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화 현판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의 덕숭산(德崇山)에 소재하는 수덕사(修德寺) 경내에는 만공 월면(滿空 月面, 1871~1946) 스님이 쓴 현판이 다수 걸려있다. 수덕사는 경허(鏡虛) 성우(惺牛, 1849~1912) 선사가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킨 이래 한국 선불교의 큰 법맥을 형성한 도량이다. 만공 월면 스님은 경허 선사의 제자로서 수덕사를 비롯 정혜사(定慧寺)와 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보월(寶月), 용음(龍吟), 춘성(春城), 원담(圓潭) 등 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수덕사가 선불교의 중심 도량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한 선지식이다. 만공 스님은 치열한 수행과 파격적 어록으로도 유명한데, 이러한 선승(禪僧)의 면모는 그의 글씨에서도 잘 드러난다. 수덕사 경내에는 〈청련당(靑蓮堂)〉과 〈백련당(白蓮堂)〉, 그리고 〈세계일화(世界一花)〉 등 그가 남긴 편액 글씨가 다수 전래하고 있다. 만공 선필(禪筆)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글씨로 〈세계일화〉를 들 수 있다. 이 현판은 현재 청련당에 걸려 있으며, 그 친필 묵적은 수덕사 성보박물관인 근역성보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글씨에는 좌측에 ‘근화필(槿花筆)’이라는 기지(記識)가 서사되어 있다. ‘무궁화 꽃으로 쓴 글씨’라는 뜻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해방이 된 후 만공 선사가 무궁화 꽃송이에 먹을 찍어 쓴 글씨라고 한다. 실제 글씨를 보면, 일반적인 모필(毛筆)로 쓴 필획과 달리 거칠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는 하나의 꽃’이라는 내용, 실제 자연물인 꽃이라는 매체를 활용했다는 형식, 그리고 해방 직후에 우리나라의 상징물을 활용하여 글씨를 썼다는 창작의 시점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세계일화〉 현판은 만공 선사의 선기(禪氣) 넘치는 서예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수덕사 청련당(靑漣堂)과 백련당(白蓮堂)은 대웅전(大雄殿) 앞마당 좌우의 요사채이다. 〈청련당〉과 〈백련당〉 현판은 만공 선사가 1934년에 쓴 글씨이다. 〈청련당〉 글씨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원필(園筆)을 구사한 행서(行書)이다. 첫 글자인 ‘청(靑)’은 나머지 두 글자인 ‘련(蓮)’ 및 ‘당(堂)’과 수필(收筆) 부분의 처리가 다소 다르다. 특히 아래의 ‘월(月)’의 첫 획과 둘째 획 마지막 부분에서 크게 갈라진 붓끝이 그대로 드러나게 붓을 뺀 처리는 파격미를 보여준다. 첫 글자의 파격과 달리 ‘련’과 ‘당’은 편액 전체의 여유롭고 활달한 기조를 형성하는데 충실하다. 특히 ‘련(蓮)’의 ‘초(艹)’와 ‘거(車)’ 부분에서 연속되어 나타난 둥근 회전 운동의 원만한 기세는 편액의 여유로운 인상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백련당〉 글씨는 〈청련당〉과 대조적으로 힘이 넘치는 방필(方筆)을 구사했다. 첫 글자인 ‘백(白)’의 두 번째 획의 강력한 비백은 특히 인상적이다. ‘청련당(靑蓮堂)’과 겹치는 두 글자인 ‘련(蓮)’과 ‘당(堂)’에서 두 편액 글씨의 현저히 다른 멋을 확인할 수 있다. 〈백련당〉 ‘련’의 책받침(辶)의 거친 운필과 노봉(露鋒)의 수필(收筆)은 〈청련당〉의 동일 부분의 유려하고 원만한 처리와 크게 다르다. 〈청련당〉과 〈백련당〉 편액은 만공 선사가 대조적인 미감의 글씨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서가(書家)였음을 잘 보여주는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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