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대웅전(大雄殿)에는 나무로 만든 세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중앙에는 석가여래, 부처님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은 약사여래, 왼쪽에는 아미타여래로 1937년부터 대웅전 수리 공사를 진행하던 당시 수덕사에 계셨던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대선사께서 1938년 전북 남원에 있는 만행산의 귀정사(歸政寺)에서 옮겨온 불상이다.
2003년 보존처리 진행 당시 발견된 복장유물의 조성발원문에 의해 1639년(崇禎 12年, 인조 17)에 만행산 풍국사 대웅전과 보광전에 봉안될 불상으로 새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불상은 원 봉안처와 현재 봉안된 곳이 다른 경우가 흔한데 수덕사 대웅전 목조삼여래좌상의 경우도 전북 남원 풍국사에서 귀정사로 옮겨졌으며, 또 귀정사에서 수덕사로 다시 옮겨진 것이다. 귀정사에서 수덕사로 만공스님에 의해 옮겨질 때 기록이 『전국사찰전서』와 「총독부 관보」에 게재되어 있다. 소화 13년(1938년) 11월 14일자 「조선총독부관보」 제3547호 종교란에 ‘전라북도 남원군 산동면 귀정사의 주지인 배정순 스님이 소화(昭和) 13년(1938년) 11월 9일에 석가여래상과 약사여래상, 아미타여래상을 수덕사에 양도한다’라는 내용과 이 사항을 조선총독부에서 허가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석가여래좌상의 전체 높이는 155.3㎝, 폭은 105.0㎝이고, 굽어보는 듯한 자세에 당당한 어깨와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머리카락은 소라처럼 말려 올라가는 형태의 나발로 표현되었고,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되었다는 육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고대 인도인의 머리장식에 사용했던 구슬을 표현한 계주는 이마 위의 중앙계주와 정수리 부분의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다. 네모꼴의 각진 얼굴에는 근엄한 듯 부드러운 미소가 엿보인다.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가늘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착의법인 편단우견에서 오른쪽 어깨 윗부분 옷을 앞으로 끌어당겨 오른쪽 어깨를 살짝 가린 변형편단우견 형식으로 오른팔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17세기 불상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려 바닥을 가리키는 듯한 모양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항마촉지인은 석가여래의 가장 흔한 손 모양으로 부처님께서 수행을 방해하는 마왕 무리를 항복시키고 난 후, 땅을 가리켜 지신(地神)이 이를 증명하도록 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약사여래좌상은 높이 148.5㎝, 폭은 98.9㎝이며, 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148.1㎝, 폭 96.2㎝ 로 머리 모양, 얼굴 형태와 귀·눈·입·코의 표현, 양손과 옷 주름선의 사실적 묘사 등이 석가여래좌상과 같은 양식적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다만, 약사여래좌상이 왼손을 위로 하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쪽 손바닥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아미타여래좌상은 손 모양의 좌우가 바뀌고 약그릇이 없다는 것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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