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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수덕사 대웅전(大雄殿)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34년인 1308년에 창건된 불전으로 건립연대가 기록된 건축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미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창건 이후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2~1374) 때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 화상이 중수하고, 1528년(중종 23)에는 단청 보수 공사가 있었다.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수덕사도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대웅전 만은 큰 피해 없이 보존되었다. 이후 1688년(숙종 14)과 1751년(영조 27), 1770년(영조 46), 1803년(순조 3)에 대웅전 보수 불사가 있었고, 일제강점기인 1937년과 광복 이후 2010에 해체 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건물은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로 지어졌으며,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자연석 주초석에 배흘림을 준 원주(圓柱)를 세우고[1]대웅전의 기중 중에 측면 중앙의 기둥만 사격형 단면의 각주로 되어 있다. 그 위에 주심포(柱心包)를 올렸다. 지붕가구는 2고주(高柱) 9량가(梁架) 형식으로 국내 불전 중애서는 대규모 형식이다. 내부에 천장을 따로 설치하지 않은 우물천정을 하고 있어, 서까래와 여러 부재들로 구성되는 내부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대웅전에는 목조건축의 여러 기법이 잘 나타나 있는데 여러 기둥 중에서 모서리 기둥을 더 높게 하여 지붕이 쳐져 보이는 현상을 막는 귀솟음과 기둥 위 쪽에 바깥으로 벌어져 보이는 착시를 교정하기 위해 귀기둥의 상부를 안쪽으로 약 3cm정도 기울여 배치하는 안쏠림이 적용되어 있다. 대웅전의 공포는 고려시대 주심포로 기둥 머리 부분에 주두(柱頭)를 받치는 헛첨차를 결구하였고, 외부에는 살미의 머리를 쇠서[牛舌] 형태로 조각한 특징이 있다. 기둥 위의 공포에 우미량(牛尾梁)이라는 곡선의 부재를 두어 지붕가구를 구성하는 독특한 구조법이 나타나며, 마루도리를 받치는 공포 형태의 포대공과 솟을합장, 대들보 아래쪽 면을 좁게 보이도록 가공한 항아리 보 등은 수덕사 대웅전에서 두드러지는 고려시대 건축의 특징이다. 대웅전의 이러한 특징은 국내에 소수만 남아 있는 고려시대 목조건축의 사례라는 의미와 더불어 우미량 등을 통해 주심포 건축의 구조미를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웅전 전면에는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제작된 〈大雄殿(대웅전)〉 편액이 걸려 있다. 1970년대 말까지는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 1589~1645)의 글씨로 알려진 편액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 법당에는 〈목조삼존여래좌상(木造三尊如來坐像)〉(1639)과 〈석조삼십삼관음상(石造三十三觀音像)〉(2006), 〈삼불회도(三佛會圖)〉(1908), 〈신중도(神衆圖)〉(1994)가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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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석 1 대웅전의 기중 중에 측면 중앙의 기둥만 사격형 단면의 각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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