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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정사

조인정사(祖印精舍) 건물은 대웅전(大雄殿) 영역 하단(下段)의 무이당(無二堂), 범종각(梵鍾閣)과 법고각(法鼓閣)과 함께 일원을 구성하고 있는데, 법고각 뒤 편에 위치한다. 조인선원의 선방(禪房)으로 사용하고 있는 무이당 건물과는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 전면에는 〈수덕사(修德寺)〉 편액(扁額), 〈종무소〉 편액, 〈덕숭총림 수덕사 종무소(德崇叢林修德寺宗務所)〉 편액을 비롯하여 〈수덕사 신도회〉·〈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신도회〉·〈덕숭총림 수덕사 사회복지법인 수덕〉 등 현재 건물의 용도를 보여주는 여러 점의 편액이 걸려있다. 이 건물은 1916년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이 세우고, 부처님[佛祖]의 지혜를 판단하는 곳이란 뜻으로 ‘조인정사(祖印精舍)’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1]〈덕숭산 수덕사 사적비(德崇山修德寺事蹟碑)〉의 비문(2002)에는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선사의 손상좌(孫上座) 벽초 경선(碧超鏡禪, 1899~1986) 스님이 1934년 주지가 된 후 1936년부터 중창 불사(重創佛事)를 시작하여 대웅전 앞마당의 토탑(土塔)이 있던 자리에 조인정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외 수덕사에서 발간한 여러 자료에서 1916년 만공 월면 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원래는 선방으로 사용하면서 대웅전 정면에 있었으나, 해체·보수를 진행하던 중 과거 탑이 세워져 있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가 확인되어 199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고, 지금은 종무소(宗務所)로 사용하고 있다. 가산 거사 김수곤(金水坤, 1873~1950)이 쓴 조인정사 상량문(上樑文)과 뒤에 붙은 연화질(緣化秩) 등의 인명 기록을 통해 1932년 건물을 중수(重修)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중건주(重建主)는 만공 월면 스님, 화주(化主)는 김수곤 거사였고, 공사 감독과 편수를 맡았던 목수(木手)는 김기홍(金基洪, 생몰년 미상)과 김덕희(金德熙, 생몰년 미상)였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이다. 외벌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된 초석(礎石)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연꽃 봉오리를 조각한 이익공 형식의 공포를 올려 지붕가구을 받치고 있으며, 보머리에는 봉황(鳳凰)을 초각하여 화려함을 더하였다. 〈수덕사(修德寺)〉 편액(扁額)의 글씨는 1945년 서예가 성재 김태석(惺齋金台錫, 1875~1953)이 쓴 것이다. 주련(柱聯)의 글씨 주인은 알 수 없지만, 『작법귀감(作法龜鑑)』(1827) 「미타청(彌陀請)」의 게송(偈頌)을 4폭에 나눠 쓰고 건물 전면 양쪽 끝에 2점씩 걸었다. 본래 조인정사에는 1933년 화승(畵僧) 보응 문성(普應文性), 영성 몽화(影惺夢華), 화연 일화(華蓮日和)가 함께 제작한 〈아미타회상도(阿彌陀會上圖)〉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수덕사 근역성보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덕숭산 수덕사 사적비(德崇山修德寺事蹟碑)〉의 비문(2002)에는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선사의 손상좌(孫上座) 벽초 경선(碧超鏡禪, 1899~1986) 스님이 1934년 주지가 된 후 1936년부터 중창 불사(重創佛事)를 시작하여 대웅전 앞마당의 토탑(土塔)이 있던 자리에 조인정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외 수덕사에서 발간한 여러 자료에서 1916년 만공 월면 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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