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만공기념관(滿空記念館) 앞에 건립되어 있는 작은 비석은 1931년에 건립된 〈송만공대선사구휼송덕비(宋滿空大禪師救恤頌德碑)〉이다. 이 비석은 일제강점기 빈민(貧民)과 이재민(罹災民)의 구휼(救恤)에 기여한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선사를 기리는 송덕비이다. <매일신보> 1931년 5월 27일자 기사에 “정혜사 만공선사가 덕산면 8개 리(里)의 우박으로 인한 재난구제를 위하여 백미 17석(260원)을 베풀었으며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덕산면 8개 리 수백 호의 가구들이 12전(錢)씩 모아 선사의 송덕비를 ‘덕산면 대동리 홍성통로’에 건립하는 중”이라는 내용이 있어서, 이 송덕비가 기사에 나오는 비석임을 알 수 있다.
이 비석은 어느 때인가 파손 및 매몰되었다가 1999년에 수덕사 인근 마을 주민들의 제보를 받은 정묵(正黙, 1962~) 스님과 주경 스님이 윤봉길 의사 기념관 인근에서 깨진 상태로 묻혀있던 비석을 수덕사로 옮겨온 것이다.
현재 이 비석은 자연석에 홈을 파서 비좌(碑座)로 사용하고 있으며, 비신은 윗면이 둥근 원수형(圓首形)이다. 비석의 2/3 지점이 절단되었으며, 접합된 상태이다. 비석의 앞면과 뒷면에는 모두 글씨가 새겨져 있으나 풍화가 심해 판독되지 않는 글자들도 있다.
앞면 가운데 위아래에 큰 글자로 ‘宋滿空大禪師救恤頌德碑’라고 새겨놓고 좌우에 만공 선사를 칭송하는 명(銘)을 새겼는데 일부는 판독되지 않는다. 판독문은 ‘☐☐大師, ☐☐功深. 淸淨世尊, 慈悲觀音. ☐☐☐災, 穻古稀今. ☐☐恤☐, ☐☐善心. ☐崖☐死*曰, 旱天甘露. 普濟其*人, 孰不仰欽.’이다. 뒷면에는 비석의 건립 연대인 소화(昭和) 6년 신미(辛未) 5월이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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