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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암각화

〈이응노 암각화〉는 수덕사 일주문 옆, 수덕여관 입구 바위에 새긴 이응노(李應魯, 1904~1989)의 〈문자추상(文字抽象)〉 작품이다. 편평한 바위면 오른쪽 귀퉁이에 ‘1969 이응노 그림’이라고 서명을 남겼다. 〈문자추상〉은 이응노가 한자나 한글 등 문자의 형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실험을 통해 창조한 작품 양식이다. 〈문자추상〉 양식의 작품들은 동백림 사건[1]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은 1967년 7월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중앙정보부는 독일·프랑스 유학생과 교민이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과 평양에 드나들면서 간첩 활동을 하였다고 하며, 이응노를 비롯한 작곡가 윤이상, 시인 천상병 등을 간첩으로 지목하였다.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이응노는 한국전쟁 중 납북된 아들 소식을 듣고자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에 방문하였다가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로 인해 이응노는 한국으로 송환되어 2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하였다. 당시 유럽의 많은 미술계 인사들이 그의 석방을 바라는 탄원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하며 구명운동을 벌였다. 1969년 3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그해 5월 프랑스로 떠난 후 1989년 서거할 때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동백림 사건 이후 한국 입국뿐 아니라 전시회 같은 한국 활동이 금지되었고,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어 해외에서 열리는 자신의 전시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자 1983년 프랑스로 귀화하였다.이후 본격적으로 시도하였는데, 특히 수덕여관의 〈이응노 암각화〉는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獄苦)를 치른 직후의 작품 2점이다. 편평하고 넓은 바위 표면에 문자인 듯 사람의 형상인 듯한 문양들을 가로로 넓게 배치하고, 문양의 면을 파내는 방식으로 새겨 입체감을 주었다. 〈이응노 암각화〉는 1996년 수덕여관과 함께 ‘충청남도 기념물 이응노선생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수덕여관은 이응노가 나고 자란 고향 인근으로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때 그가 생계를 유지하며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었다. 1969년 3월 다시 수덕여관으로 돌아와, 옥살이로 지친 몸과 마음을 3개월간 추스르고 그해 5월 프랑스로 떠났다. 지금도 수덕여관 입구에는 이응노가 직접 쓴 〈수덕여관〉 현판이 걸려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은 1967년 7월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중앙정보부는 독일·프랑스 유학생과 교민이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과 평양에 드나들면서 간첩 활동을 하였다고 하며, 이응노를 비롯한 작곡가 윤이상, 시인 천상병 등을 간첩으로 지목하였다.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이응노는 한국전쟁 중 납북된 아들 소식을 듣고자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에 방문하였다가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로 인해 이응노는 한국으로 송환되어 2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하였다. 당시 유럽의 많은 미술계 인사들이 그의 석방을 바라는 탄원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하며 구명운동을 벌였다. 1969년 3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그해 5월 프랑스로 떠난 후 1989년 서거할 때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동백림 사건 이후 한국 입국뿐 아니라 전시회 같은 한국 활동이 금지되었고,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어 해외에서 열리는 자신의 전시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자 1983년 프랑스로 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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