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一柱門)은 선문(禪門)에서 250m 정도 오르면 마주하게 되는 수덕사의 3번째 문이다. 선문에서 일주문으로 오르는 중에 승탑원(僧塔院)과 근역성보관, 선미술관을 지나게 된다. 일주문을 바라보고 오른쪽에는 2008년까지 사용되던 매표소를 새로 꾸민 커피숍 ‘빈잔’이 있고, 그 옆에 수덕사의 역사와 경내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매표소의 맞은편에는 ‘수덕여관’과 ‘선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다.
『수덕사중수기』(2002)에 의하면 일주문은 1962년에 벽초 경선(碧超鏡禪, 1899~1986)스님이 처음 세웠고, 1998년에 인곡 법장(仁谷法長, 1941~2005)스님이 현 위치로 옮겼다. 이때 현재 카페 ‘빈잔’ 건물과 안내판이 같이 설치되었다. 일주문이 처음 세워진 1962년은 수덕사가 대한불교조계종 7교구 본사로 승격되면서 수덕사의 사격이 내용적인 면이나 외관적인 면에서 큰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이때 수덕사에서는 청련당(靑漣堂)을 세워 승당(僧堂)을 크게 확보하였고, 정혜사(定慧寺)로 연결되는 등산로 1080계단을 쌓아 선원 활성화에 힘쓰는 등 많은 불사가 같이 이뤄졌다.
문의 모습을 보면 정면 1칸의 목조건축물로 2개의 기둥이 나란히 서있어 측면에는 칸이 없는 전형적인 일주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3단의 화강석 기단 위에 난간을 두르고 연꽃 문양을 조각한 초석을 두어 기둥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기둥은 석재로 상당히 굵은 원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의 위와 아래를 중간보다 가늘게 깎아낸 배흘림 기둥으로 만들었다. 기둥 위에는 목조로 된 지붕을 올렸는데 도리를 5개 쓴 5량가로 구성하였다. 측면에 칸이 없는데도 지붕을 크게 만들어 다소 불안정한 구조가 되었는데 이를 기둥 머리에서 앞뒤로 길게 뽑은 용두머리를 가진 창방과 까치발로 지탱하여 구조적인 안정성을 갖추고 있다. 기둥과 처마 사이에는 2개의 공포를 배치해서 다포형식을 구성하였고, 서까래와 부연을 둔 겹처마를 구성하였다. 지붕의 형태는 맞배지붕인데 측면에 풍판을 달아 비가 지붕 안쪽으로 들이치지 않도록 하였다.
문에는 2개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산 아래서 걸어올 때 보이는 정면 처마에는 검은 바탕에 흰글씨로 ‘덕숭산수덕사(德崇山修德寺)’라 적혀 있고, 건물에 가까이 가야 보이는 안쪽에 걸은 현판은 흰바탕에 검은 글씨로 ‘동방제일선원(東方第一禪院)’이라 쓰여 있다. 두 현판 모두 소전 손재형(素荃 孫在馨, 1902~1981)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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