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林泉, 1908~1965)은 고고미술사학자이자 동양화가이며, 해방 이후 국립박물관 학예관 등을 역임한 관료였다. 개성 출생으로 본관은 옥야(沃野)이며, 본명은 화봉(化鳳)이다. 만주 간도(間島)에서 연신중학교에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 동경미술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해 2년간 수학하였다.
귀국 후에는 한국의 고고미술에 관심을 두어 관음사 대웅전(觀音寺 大雄殿)의 채색화원(彩色畵員)으로서 공사를 담당하였으며, 수덕사 대웅전을 비롯하여 성불사 극락전(成佛寺 極樂殿), 화엄사 각황전(華嚴寺 覺皇殿), 개심사 대웅전(開心寺 大雄殿) 등의 보수공사에서 채색조사원이 되었다. 광복 후에는 국립박물관의 초대 멤버가 되어 문화유산의 복원·보수·실측 공사 등을 담당하였으며, 이 방면의 유일한 권위자로서 살아있는 문화재라 일컬어졌다. 광복 후에는 불국사 대웅전(佛國寺 大雄殿), 수원 팔달문(八達門), 경복궁(景福宮), 진주 촉석루(矗石樓) 등 주요 건축물 보수 및 중수공사를 담당하였고, 국립박물관 학예관, 문화재보존위원회 제1분과위원 등을 지냈다. 1962년에는 임천고건축설계사무소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다.
임천은 특히 단청 관련 작품에 조예가 깊어 많은 모사 작품을 남겼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1940년에는 수덕사 대웅전 해체 수리 공사에 조사원으로 참여하여 수생화, 야생화, 비천 극락조 등 고려~조선시대 벽화 및 단청 모사도를 작성하였다. 임천은 1962년 발표한 「수덕사 대웅전 벽화」 보고 자료에서 대웅전 벽화 발견의 경위와 위치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모사도를 작성하였다고 하였다. 임천이 작성한 모사도 중 17점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임천의 수덕사 대웅전 모사도는 지금은 확인할 수 없는 수덕사 대웅전에 남아 있던 고려시대 벽화 및 단청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관련기사
-
1937~1940년 수리공사: 모사도-고려시대 벽화수덕사 대웅전 수리 당시 육안으로 확인되었던 단청은 초기 단청이라 볼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으며, 내부 단청이 일부 남아 있었지만 이 역시 초기 형태는 아닌 것으로 파악되었다. 내부 단청은 박락이 심하고 나중에 보색된 것으로 보이는 단청도 있는 상황이었고, 외부는 박락이 심하지 않아 단청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벽화의 경우 벽의 수리에 의해 없어진 곳도 있었지만, 다행히 벽의 덧칠을 벗겨낸 부분에서 고벽화가 발견되었다. 특히 고벽화의 발견과 함께 대웅전 벽화는 보존처리를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벽화... -
1937~1940년 수리공사: 모사도-단청국립중앙박물관에는 1937~1940년 수리공사 당시 발견된 단청(丹靑)의 모사도(模寫圖)가 소장되어 있다. 이 자료는 공사 당시 벽화 및 단청 모사 등의 작업에 참여하였던 임천(林泉, 1908~1965)에 의하여 작성된 것이다. 1960년에 발표된 임천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외부의 조선시대 벽화를 조사하던 중 벽체 내부에서 고려시대 벽화가 확인되었고 이에 대한 조사 및 모사도 작성을 위하여 공사 비용 증액과 기간의 연장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제작한 모사도의 수량과 전모는 상세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창방 이상의 30여... -
대웅전수덕사 대웅전(大雄殿)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34년인 1308년에 창건된 불전으로 건립연대가 기록된 건축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미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창건 이후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2~1374) 때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 화상이 중수하고, 1528년(중종 23)에는 단청 보수 공사가 있었다.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수덕사도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대웅전 만은 큰 피해 없이 보존되었다. 이후 1688년(숙종 14)과 1751년(...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