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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흥수(1938~2023)

전흥수(田興秀, 1938~2023)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대동리 출신의 대목장(大木匠)[1]대목장은(大木匠)은 집 짓는 일의 전 과정, 즉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일부터 건축물의 설계, 공사, 감리까지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목수로서 궁궐이나 사찰, 군영 시설 등을 건축하는 도편수(都片手)를 지칭하기도 한다, 대목장은 창호, 난간 등의 목공일을 맡아 하는 소목장(小木匠)과 구분한 데서 나온 명칭이며, 와장·드잡이공·석장·한식미장공·단청장 등과 함께 집의 완성까지 모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대목장은 1982년부터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이다. 60여 년간 전통 건축 목수(木手)로서, 흥인지문(興仁之門), 창덕궁(昌德宮), 마곡사(麻谷寺) 등 주요 문화유산 수리·보수와 사찰 공사에 참여하였다. 전통 무형유산 분야의 기술을 인정받아, 2000년 국가무형유산 대목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8세에 김중희(金重熙, 생몰년 미상)[2]김중희는 충청도 지역의 유명한 사찰 목수(木手)이며, 1937년 수덕사 대웅전(大雄殿) 해체 보수 공사를 총괄한 도편수(都片手) 김덕희(金德熙, 생몰년 미상)의 동생이다.의 문하생이 되어 목공(木工)에 입문한 뒤, 1961년부터 남한산성(南漢山城)·흥인지문·창덕궁 등 주요 문화유산 수리·보수와 마곡사·월정사(月精寺)·화엄사(華嚴寺) 등 주요 사찰 공사에 참여하였다. 1979년 문화재수리기능자(국가유산수리기능자) 자격을 취득하고, 수원 팔달문(水原八達門) 해체·보수 공사의 도편수(都片手)가 되어 3년간 공사를 이끌었다. 수덕사에서 1999년 사천왕문(四天王門), 2000년 금강문(金剛門)을 새로 지을 때도 편수(片手)로서 공사를 총괄하였다. 1998년 고향이자 수덕사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예산 덕산면 대동리에 ‘한국고건축박물관’을 열고,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목조건축물의 축소 모형을 직접 제작하여 한국의 옛 건축을 관람·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주요 전시물은 〈숭례문(崇禮門)〉,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무위사 극락전(無爲寺極樂殿)〉 등의 1/5 또는 1/10 축소 모형물과 목조건축의 구조와 기법을 알 수 있는 공포(栱包) 등의 가구(架構) 모형물, 목수의 연장 같은 소품 등이며, 총 2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숭례문〉 모형은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된 후 복원을 위해 국립고궁박물관에 마련된 ‘숭례문 복구 정부 합동 대책 본부’(2008)로 옮겨져 자료로 활용되었다. ‘한국고건축박물관’은 현재 휴관 중이다.
관련주석
  • 주석 1 대목장은(大木匠)은 집 짓는 일의 전 과정, 즉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일부터 건축물의 설계, 공사, 감리까지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목수로서 궁궐이나 사찰, 군영 시설 등을 건축하는 도편수(都片手)를 지칭하기도 한다, 대목장은 창호, 난간 등의 목공일을 맡아 하는 소목장(小木匠)과 구분한 데서 나온 명칭이며, 와장·드잡이공·석장·한식미장공·단청장 등과 함께 집의 완성까지 모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대목장은 1982년부터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 주석 2 김중희는 충청도 지역의 유명한 사찰 목수(木手)이며, 1937년 수덕사 대웅전(大雄殿) 해체 보수 공사를 총괄한 도편수(都片手) 김덕희(金德熙, 생몰년 미상)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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