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희(金德熙, 생몰년 미상)는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수덕사 대웅전(大雄殿) 해체 보수 공사[1]수덕사 대웅전 해체 보수 공사 후 발간한 보고서는 한국 최초의 문화재 수리보고서이다.를 총괄한 도편수(都片手: 총책임 목수)이다. 김덕희는 당대 최고의 사찰 목수(木手)로서 근대 사찰 건축 계보의 뿌리를 이룬다. 그의 제자들은 국가무형유산 ‘대목장(大木匠)’과 ‘소목장(小木匠)’으로 세분화되어 길을 이어가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 해체 보수 당시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목수 이케다(池田)에게 도편수를 맡기려 하였고, 만공 스님(滿空月面, 1871~1946)은 ‘우리의 건축물을 왜놈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반대하였다. 만공 스님이 조선인 목수 김덕희에게 맡기자고 주장하여 총독부와 큰 마찰이 발생하였다. 도편수 지정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이케다와 김덕희 중 더 실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대웅전 수리를 맡기자’고 결론이 나게 되었다. 송판 두 장을 대패질해서 노끈으로 칭칭 감아 우물에 던진 후, 하루가 지난 뒤 꺼내서 더 오래 붙어 있는 쪽을 도편수, 다른 사람은 부편수(副片手)로 삼기로 하였다. 송판을 더 섬세하게 대패질할수록 접착력이 올라가기 때문에 목공(木工)의 기본으로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결과는 김덕희의 승리였다. 전하는 이야기에 만공 스님이 송판 사이에 풀을 더해서 김덕희를 도왔다는 말이 있으나, 김덕희가 도편수를 맡아 총괄한 수덕사 대웅전 해체 보수 공사는 현재까지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김덕희는 월정사(月精寺) 대웅전 보수 공사에서도 도편수를 맡아, 도편수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그의 명성을 들은 목수들이 가르침을 받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모여들었는데, 그중에는 나중에 국가무형유산 대목장[2]대목장은(大木匠)은 집 짓는 일의 전 과정, 즉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일부터 건축물의 설계, 공사, 감리까지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목수로서 궁궐이나 사찰, 군영 시설 등을 건축하는 도편수(都片手)를 지칭하기도 한다, 대목장은 창호, 난간 등의 목공일을 맡아 하는 소목장(小木匠)과 구분한 데서 나온 명칭이며, 와장·드잡이공·석장·한식미장공·단청장 등과 함께 집의 완성까지 모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대목장은 1982년부터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이 된 최기영(崔基永, 1945~)[3]최기영 대목장은 1960년 수덕사 일주문(一柱門) 신축을 총괄하였다.과 전흥수(田興秀, 1938~2023)도 있었다.
한편, 1932년 4월 김수곤(金水坤, 1873~1950) 거사가 지은 수덕사 조인정사(祖印精舍) 상량문(上樑文) ‘목수질(木手秩)’에 ‘편수 김덕희(片手金德熙)’라는 기록이 있어, 대웅전 해체 보수 전에 이미 수덕사 조인정사 상량[4]건물 기둥 위에 보, 처마 도리, 중도리, 마룻대 등의 지붕 가구를 올리는 일.에 편수로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때 감독은 김기홍(金基洪, 생몰년 미상)이었고, 김덕희는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수덕사 대웅전 해체 보수 공사 후 발간한 보고서는 한국 최초의 문화재 수리보고서이다.
- 주석 2 대목장은(大木匠)은 집 짓는 일의 전 과정, 즉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일부터 건축물의 설계, 공사, 감리까지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목수로서 궁궐이나 사찰, 군영 시설 등을 건축하는 도편수(都片手)를 지칭하기도 한다, 대목장은 창호, 난간 등의 목공일을 맡아 하는 소목장(小木匠)과 구분한 데서 나온 명칭이며, 와장·드잡이공·석장·한식미장공·단청장 등과 함께 집의 완성까지 모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대목장은 1982년부터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 주석 3 최기영 대목장은 1960년 수덕사 일주문(一柱門) 신축을 총괄하였다.
- 주석 4 건물 기둥 위에 보, 처마 도리, 중도리, 마룻대 등의 지붕 가구를 올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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