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엽(金一葉, 1896~1971)[1]본명은 원주(元周)이다.은 시인으로, 시조인으로, 수필가로 한국 근대여성운동을 일으킨 대표적 문인이다.
일엽이 문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소학교를 졸업하던 12세인 1907년이다. 딸을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대장부로 키우겠다’고 신식학교에 보내던 어머니(이마대 여사)가 동생을 출산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떠났고,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갓난쟁이 동생이 세상을 떠나자, 그 죽음에 대한 통탄의 심정을 글로 옮긴 것이 한국문학상 신시의 효시로 불리는 ‘동생의 죽음’이다.[2]이 시는 최초의 근대시로 알려진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1년 먼저 발표된 ‘한글 자유시’로 평가된다. “업으면 방글방글 / 내리면 아장아장... (중략) 언제나 너를 업고 / 다시는 언니 혼자 / 가지를 아니하꼬마 ”
이후 일본 유학시절 친구 허영숙이 이광수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고 이광수에게 글솜씨를 인정받으면서 이광수로부터 ‘일엽(一葉)’이란 필명을 받을 정도로 글 솜씨에 남다른 재주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1920년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잡지 『신여자(新女子)』를 창간·발행하면서 조선에서 여성해방을 위한 신여성운동을 일으키는데 앞장섰다.
일엽의 작품은 초기에는 여성 계몽적인 것이 주를 이루었지만 점차 개인의 심정적인 것으로 전환하여 님에 대한 그리움과 기원을 표현하는 경향으로 변하였다. 또한 형식적인 면에서 일엽의 시 ‘동생의 죽음’은 각행이 4음보로 일정한 규칙을 보이는 것과 같이, 시와 시조의 형식은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음수률의 정형성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한국적 리듬과 애(哀)와 한(恨)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일엽은 1928년 불교에 귀의히였고, 출가 시 만공 선사의 ‘수행과 깨달음이 완성되기 전까지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버리라’는 당부에 따라 세상에 글을 내놓지 않았다.[3]만공 선사는 스님에게 ‘그릇에 다른 것이 담겻으면 담을 것을 담지 못하지 않는가? ’라고 하셨고, 스님은 세상에 글을 내놓지 않았지만, 신문지 귀퉁이 등에 메모 형태로 적어 두었다. 이후 깨달음을 얻고 중생의 마음을 살피고 시대의 흐룸에 맞는 포교와 교화의 방법으로 27년 중단했던 집필 활동을 재개했다. 저서로는 수필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 『청춘을 불사르고』(1962), 마지막저서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4)가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본명은 원주(元周)이다.
- 주석 2 이 시는 최초의 근대시로 알려진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1년 먼저 발표된 ‘한글 자유시’로 평가된다. “업으면 방글방글 / 내리면 아장아장... (중략) 언제나 너를 업고 / 다시는 언니 혼자 / 가지를 아니하꼬마 ”
- 주석 3 만공 선사는 스님에게 ‘그릇에 다른 것이 담겻으면 담을 것을 담지 못하지 않는가? ’라고 하셨고, 스님은 세상에 글을 내놓지 않았지만, 신문지 귀퉁이 등에 메모 형태로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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