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흡(道洽, 1800년대 후반~20세기 중반) 스님은 육화문중(六和門中)의 8대손으로 기용(䐀用, 생몰년 미상) 스님을 은사(恩師)로 출가하였다. 생애와 관련되어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손상좌 종안(宗岸, 생몰년 미상) 스님에 의하면 황해도 구월산에서 수행하다가 만공(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을 만나 수덕사 견성암(見性菴)으로 내려와 주석(住錫)하였다고 하며, 속가는 상당히 부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스님은 만공 스님 최초의 비구니 제자로 1910년 경술년 동안거(冬安居)를 견성암에서 지냈다.
근대 한국 불교사에 최초의 비구니 선원으로 개원한 견성암은 조실(祖室) 만공 스님의 뜻에 따라 1930년 경 비구니 도흡 스님이 증축 불사를 하였다. 이렇게 증축된 견성암은 1960년대 후반 벽초(碧超鏡禪, 1899~1986) 스님과 견성암 대중들에 의해 현재 위치로 옮겨오기 전까지 비구니 선방 수행 도량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했다. 벽초 스님은 평소에 “견성암 창건 공덕주는 도흡 스님이다. 후손들이 스님의 뜻을 이어받아 견성암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도흡 스님이 입적한 후 만공 스님의 뜻을 받들어 세운 도흡 스님의 창건〈공덕비(比丘尼道洽不忘碑)〉는 옛날 견성암 자리 위에 세웠으나, 견성암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오면서 〈공덕비〉를 현재의 견성암 입구 오른쪽 바위에 옮겨 세웠다.
도흡 스님은 문하에 재홍(在弘, 생몰년 미상), 두은(頭恩, 생몰년 미상), 대원(大圓, 생몰년 미상) 등의 상좌(上座)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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