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수옥(華山守玉) 스님은 덕숭산 수덕사 견성암(見性菴)의 비구니이다.
〈양산 내원사 비구니 화산당 수옥 화상 비문(梁山內院寺比丘尼華山堂守玉和尙碑文)〉에 따르면, 호는 화산(華山), 속성은 정(鄭)씨, 본관은 동래(東萊), 아버지 정태익과 어머니 충주 이씨 사이에서 1902년 11월 12일 경남 진해시 자은동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인간의 구속, 특히 여성으로서의 부자유함을 많이 느껴 고상하고 걸림 없는 삶을 희구하였다. 그러던 중 나염암(念菴羅洪先, 1504~1564)의 시 구절[1]새장에 갇힌 닭 먹이는 풍부하나 제 살 삶을 냄비 가까워지고(籠雞有食湯灾近), / 허공에 나는 학 먹이는 없지만 동서로 종횡자재 걸림이 없네(野鶴無粮天地寬).을 보고 출가 입산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완강한 반대로 부득이 몰래 도망 나와 수덕사 견성암(見性菴)으로 가서 비구니 묘리 법희(妙理法喜, 1887~1975) 스님을 은사(恩師)로, 비구 청월(淸月, 생몰년 미상) 스님을 계사(戒師)로 사미니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스님은 은사로부터 '석가와 미륵이 모두 중생의 종인데 그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받아 참선 공부를 하다가, 1920년부터 1924년까지는 해인사 강원에서, 1928년에는 서울 서대문 응선암에서 수학하고, 견성암에서 여름 안거[夏安居], 1929년 28세 때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용성(龍城震鍾, 1864~1940) 스님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고 2년간 율문(律文)을 수학했다. 신학문을 배우러 일본 교토에 있는 묘심사 종립학교와 부설인 미노니슈카쿠린(美濃尼衆學林)에서 3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1938년 귀국하여 상주 남장사 강원 강주(講主)로 3년간 후학을 지도하다가, 1940년부터 다시 견성암에서 6년간 정진했다. 1945년 가을 정읍 내장사에서 한 소식을 얻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2]“올연(兀然)히 앉아 있는 자재로운 나그네! 생사의 꿈을 깨고서 원적(圓寂)한 그 모습, 비바람 종일토록 휘몰아치는데, 담적(湛寂)한 그 경지가 부처의 경지일세.". 1947년 서울 보문동 보문사 비구니 전문 강원에서 권상로(權相老, 1879~1965), 윤주일(尹柱逸, 1895~1969), 안진호(安震湖, 1880~1965) 등과 함께 불교 내전을 맡아 강의하였다. 1951년 예산군 보덕사 주지, 1954년 조계종 종단 정화 제2차 중앙종회에서 비구니 도총섭(都摠攝)으로 선출, 1955년부터 천성산 내원사 주지로 취임하여 6·25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람을 일신·중창했다.[3]천성산 내원사(天聖山內院寺)는 1,300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2~647) 때 원효(元曉, 617~686) 대사가 창건한 절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이다. 1898년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한 이래, 절 이름을 내원사로 고쳐 짓고 동국제일선원을 열어 선찰(禪刹)로서 널리 알려졌다. 경허(鏡虛惺牛, 1849~1912) 선사의 법제자 혜월(慧月慧明, 1862~1937) 선사께서 조실(祖室)로 주석하시면서 운봉(생몰년 미상), 향곡(香谷, 생몰년 미상) 선사 등 한국 선종사(禪宗史)의 선맥을 잇는 명안(明岸, 1941~2006) 종사를 배출한 도량이다. 6ㆍ25사변으로 사원이 전소되자, 수옥 스님의 원력으로 10년 만에 독립된 비구니 선원으로써 새롭게 중창하였고, 그 후 만공(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의 법제자인 법희(妙理法喜, 1887~1975), 선경(禪敬, 1904~1996) 스님 등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처가 되고 있다.
1966년 2월 7일 세수 65, 법랍 49세로 입적했다. 스님은 선(禪)·교(敎)·율(律)을 두루 겸비한 대강백(大講伯)으로 1960년대 금룡(月光金龍, 1892~1965), 혜옥(晶岩慧玉, 1901~1969)과 함께 비구니 3대 강백으로 일컬어진다. 비구니 삼현(三賢) 문중의 일원이며, 문하에는 자호(慈毫, 생몰년 미상), 명성(明星, 생몰년 미상), 자윤(慈允, 1928~2006), 자장(慈藏, 생몰년 미상), 도연(道鍊, 1911~), 자산(慈山, 1933~), 향엄(香嚴, 생몰년 미상), 덕겸(德謙, 생몰년 미상)등이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새장에 갇힌 닭 먹이는 풍부하나 제 살 삶을 냄비 가까워지고(籠雞有食湯灾近), / 허공에 나는 학 먹이는 없지만 동서로 종횡자재 걸림이 없네(野鶴無粮天地寬).
- 주석 2 “올연(兀然)히 앉아 있는 자재로운 나그네! 생사의 꿈을 깨고서 원적(圓寂)한 그 모습, 비바람 종일토록 휘몰아치는데, 담적(湛寂)한 그 경지가 부처의 경지일세."
- 주석 3 천성산 내원사(天聖山內院寺)는 1,300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2~647) 때 원효(元曉, 617~686) 대사가 창건한 절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이다. 1898년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한 이래, 절 이름을 내원사로 고쳐 짓고 동국제일선원을 열어 선찰(禪刹)로서 널리 알려졌다. 경허(鏡虛惺牛, 1849~1912) 선사의 법제자 혜월(慧月慧明, 1862~1937) 선사께서 조실(祖室)로 주석하시면서 운봉(생몰년 미상), 향곡(香谷, 생몰년 미상) 선사 등 한국 선종사(禪宗史)의 선맥을 잇는 명안(明岸, 1941~2006) 종사를 배출한 도량이다. 6ㆍ25사변으로 사원이 전소되자, 수옥 스님의 원력으로 10년 만에 독립된 비구니 선원으로써 새롭게 중창하였고, 그 후 만공(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의 법제자인 법희(妙理法喜, 1887~1975), 선경(禪敬, 1904~1996) 스님 등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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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동국제일선원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부속암자이자 선원이다. -
보덕사 가야선원보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흥선대원군이 창건하였으며 수덕사 고승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비구니 수행 도량이다. -
묘리 법희(1887~1975)묘리 법희(妙理法喜) 스님은 한국불교사에서 최초로 비구니 선풍(禪風)을 진작시킨 스님이다. 법명은 법희(法喜), 법호는 묘리(妙理), 속명은 유손순(兪巽順)이다. 1887년 2월 9일 충남 공주군 탄천면 신기리에서 아버지 유창주의 딸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4세 때 외할머니 등에 업혀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미타암으로 찾아가 있다가 14세 때 귀완(貴完, 생몰년 미상) 비구니를 은사(恩師)로 출가하였다. 23세 때인 1910년 합천 해인사에서 비구니계를 받은 후 동학사 만우 상경(萬愚尙經, 생몰년 미상)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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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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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사 출가하는 사람을 승단으로 이끌어 주고, 불법을 가르쳐 주는 스승
- 권상로 근현대 시기의 불교학자, 언론인
- 안진호 근대 한국사찰 사료집 다수 출간한 학승
- 용성 진종 독립운동 참여하고 한국불교 근대화 이룬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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