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리 법희(妙理法喜) 스님은 한국불교사에서 최초로 비구니 선풍(禪風)을 진작시킨 스님이다.
법명은 법희(法喜), 법호는 묘리(妙理), 속명은 유손순(兪巽順)이다. 1887년 2월 9일 충남 공주군 탄천면 신기리에서 아버지 유창주의 딸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4세 때 외할머니 등에 업혀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미타암으로 찾아가 있다가 14세 때 귀완(貴完, 생몰년 미상) 비구니를 은사(恩師)로 출가하였다. 23세 때인 1910년 합천 해인사에서 비구니계를 받은 후 동학사 만우 상경(萬愚尙經, 생몰년 미상) 강하(講下)에서 대교과와 어록 등을 수학하였다. 25세에 경북 김천 청암사에서 『법화경』을 보던 중 사교입선(捨敎入禪)의 뜻을 세우고 당시 제방에 법력을 크게 떨치던 수덕사 만공(滿空月面, 1871~1946) 선사를 찾아가 법제자가 되기를 청하여 만공 회상(會上)에 입방(入榜·入房)하였다. 만공 스님으로부터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그 하나는 무엇인가 (萬法歸一, 一歸何處, 一是甚?)’ 라는 화두를 받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의 일상 생활 전체가 참선으로 시작해서 참선으로 끝나도록 수행정진하였다. 1916년 스님이 30세인 어느 날 만공 스님이 만해(卍海龍雲, 1879~1944)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인 '흰 눈 속에 복사꽃이 조각조각 흩날린다'는 구절을 들어 대중에게 물었는데, 대중 속에 있던 법희 스님이 “흩날린 꽃송이는 어느 곳에 있는가.” 라며 일어나 대답하고 만공 스님으로부터 칭송을 받으며 법인가를 받고, 전법게[1]만공(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의 전법게는 다음과 같다. “만상이 적멸함은 석가의 얼굴이요, 적멸이 멸하여 다함은 진귀(眞歸, 생몰년 미상) 조사의 면목(面目)이로다. 몸을 나투신 지 2, 3천 년에 묘리(妙理)의 참다운 빛이 영원토록 어두워지지 않는구나.” 와 법호 ‘묘리’를 받았다.[2]만공 스님이 법희 스님에게 전법게와 함께 전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희 수좌(首座)는 득력(得力)했어. 마침내 장부일대사(丈夫一大事)를 마쳤지. 그러나 마음의 본성 자리를 찾아내는 일도 어렵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오후(悟後) 수행이야. 깨달은 후에 내가 깨쳤네 하는 생각에 머무른다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일 밖에 남는 게 없어. 이제부터 자네는 오후 수행에 전념하고 금생에는 어느 자리에서나 법을 설할 생각 말게나. 요즘 사람들은 용심이 지나쳐 시기하는 자가 많으니 자네의 시절 인연이 그런 줄 알고 내 말을 잊지 말도록 하게." 그 후 스님은 사불산 윤필암(潤筆庵)·지리산 구층암(九層庵)·덕산 보덕사(普德寺)·천성산 내원사(內院寺)·삼각산 승가사(僧伽寺) 선원에서 수행하였다.
1966년 수덕사로 돌아와, 수덕사 비구니총림 원장으로 있던 중 1975년 3월 9일 세수 89세, 법랍 86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이 비문(碑文)을 짓고 아울러 써서 1979년에 세운 비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보덕사에 있다. 비구니 삼현(三賢) 문중(門中)에 속하며 문하에는 화산 수옥(華山守玉, 1902~1966), 춘일(春一, 생몰년 미상), 영명(靈明, 생몰년 미상), 영호(永浩, 생몰년 미상), 도원(道園, 1904~1971), 장용(糚湧, 생몰년 미상), 혜능(惠能, 생몰년 미상), 정화(貞和, 1923~몰년 미상), 수찬(守贊, 1913~1998) 등이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만공(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의 전법게는 다음과 같다. “만상이 적멸함은 석가의 얼굴이요, 적멸이 멸하여 다함은 진귀(眞歸, 생몰년 미상) 조사의 면목(面目)이로다. 몸을 나투신 지 2, 3천 년에 묘리(妙理)의 참다운 빛이 영원토록 어두워지지 않는구나.”
- 주석 2 만공 스님이 법희 스님에게 전법게와 함께 전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희 수좌(首座)는 득력(得力)했어. 마침내 장부일대사(丈夫一大事)를 마쳤지. 그러나 마음의 본성 자리를 찾아내는 일도 어렵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오후(悟後) 수행이야. 깨달은 후에 내가 깨쳤네 하는 생각에 머무른다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일 밖에 남는 게 없어. 이제부터 자네는 오후 수행에 전념하고 금생에는 어느 자리에서나 법을 설할 생각 말게나. 요즘 사람들은 용심이 지나쳐 시기하는 자가 많으니 자네의 시절 인연이 그런 줄 알고 내 말을 잊지 말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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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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