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 월면(滿空月面) 대선사는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6~1912)의 선맥(禪脈)을 이어받아 예산 수덕사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떨쳤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서 한국불교의 주체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조국 광복에 헌신했던 스님이다.
스님의 속성은 송(宋)씨, 본관은 여산(廬山), 속명은 도암(道巖), 법호는 만공, 법명은 월면이다. 전라북도 태인에서 부친 송신통(宋神通)과 모친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3년 13세 되던 해 김제 금산사(金山寺)에서 불상을 처음보고 크게 감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공주 동학사(東鶴寺)로 출가하여 진암(眞巖, 생몰년 미상) 문하에서 행자 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경허 스님을 따라 서산 천장사(天藏寺)로 와서 태허(泰虛, 생몰년 미상)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사미십계(沙彌十戒)를 받고, 법명을 월면(月面)이라 하였다. 25세 되던 계묘년에 '만법귀일(萬法歸一)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오.' 라는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을 얻고 오도송(悟道頌)을 읖었다.[1]높은 산 그 정기는 시공을 초월하였고(空山理氣古今外) / 흰 구름 맑은 바람 스스로 오가는데(白雲淸風自去來) / 달마는 무슨 일로 동토에 왔던가?(何事達磨越西天) / 닭은 축시에 울고 해는 인시에 뜨네(鷄鳴丑時寅日出) 덕숭산에 와서 금선대(金仙臺)를 짓고 수년 동안 정진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납자들을 제접하며, 수덕사와 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菴)을 중창하고 많은 사부대중을 거느리며 선풍을 드날렸다.
스님은 일제 강점기 선학원(禪學院)의 설립과 선승(禪僧)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선우공제회 운동(禪友共濟會運動)에 지도자로 참여하였고, 1937년 3월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31본산 주지 회의에 참석하여 조선 총독 미나미(南次郞, 1874~1955)에게 직접 일본의 한국불교 정책을 힐책하였다.[2]1937년 3월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전국 31본산 주지와 13도지사가 함께 모여 미나미(南次郞, 1874~1955) 총독 주재하에 불교진흥책을 논의하였다. 이 때 미나미가 전 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 1852~1919)가 조선불교에 끼친 공이 크다고 하자 만공 스님이 단에 나아가, “데라우치는 조선 승려로 하여금 일본 승려를 본받아 파계하도록 하였으니 큰 죄인이다. 마땅히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한 뒤 정교분리론을 주장하였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이는 일제 치하의 치욕스런 불교정책을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말년에는 덕숭산 정상 가까이에 전월사(轉月舍)라는 초가집을 짓고 지내다가 입적하니, 1946년 10월 20일 그의 나이 75세, 법랍 62세였다.
1947년 제자들이 정혜사 아래에 만공탑(滿空塔)을 세우고, 1936년 제작한 스님의 진영(眞影)을 경허 성우, 혜월 혜명(慧月慧明, 1861~1937) 스님 진영과 함께 금선대(金仙臺)에 봉안하였다. 덕숭문중의 법맥을 형성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한 스님의 문하에는 비구(比丘) 보월 성인(寶月性印, 1884~1924), 용음 법천(龍吟法泉, 1887~1951), 고봉 경욱(古峰景昱, 1890~1961), 금봉 주연(錦峰周演, 생몰년 미상), 서경 금우(西耕金牛, 생몰년 미상), 혜암 현문(惠菴玄門, 1886~1985), 전강 영신(田岡永信, 1898~1975), 금오 태전(金烏太田, 1896~1968), 춘성 춘성(春性春城, 생몰년 미상), 벽초 경선(碧超鏡禪, 1899~1986), 원담 진성(圓潭眞性, 1926~2008) 등과 비구니(比丘尼) 묘리 법희(妙理法喜, 1887~1975), 만성(萬性, 1897~1975), 하엽 일엽(荷葉一葉, 1896~1971) 등 뛰어난 제자들이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높은 산 그 정기는 시공을 초월하였고(空山理氣古今外) / 흰 구름 맑은 바람 스스로 오가는데(白雲淸風自去來) / 달마는 무슨 일로 동토에 왔던가?(何事達磨越西天) / 닭은 축시에 울고 해는 인시에 뜨네(鷄鳴丑時寅日出)
- 주석 2 1937년 3월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전국 31본산 주지와 13도지사가 함께 모여 미나미(南次郞, 1874~1955) 총독 주재하에 불교진흥책을 논의하였다. 이 때 미나미가 전 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 1852~1919)가 조선불교에 끼친 공이 크다고 하자 만공 스님이 단에 나아가, “데라우치는 조선 승려로 하여금 일본 승려를 본받아 파계하도록 하였으니 큰 죄인이다. 마땅히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한 뒤 정교분리론을 주장하였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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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운각향운각(香雲閣)은 1923년(불기 2950년)에 만공(滿空, 1871~1946) 스님이 건립한 것으로 정혜사에서 수덕사로 내려가는 중에 소림초당 위에 있는 석조불상을 모시는 노전(爐殿)이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1924년에는 만공스님이 향운각 〈관음보살입상〉 세웠다는 기록이 있고, 에는 향운각이 198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원래 있던 건물을 최근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향운각의 위치는 대웅전이 자리한 중심예불영역 북측 산중에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아래에는 소림초당이 있고, 인근 서측에는 정혜사가 위치한... -
만공탑〈예산 수덕사 만공탑(禮山修德寺滿空塔)은 만공 선사(滿空月面, 1871~1946)의 묘탑(墓塔)이자 기념탑(紀念塔)으로 1947년에 건립되었으며,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금선대(金仙臺)와 정혜사(定慧寺)의 동쪽에 있다. 덕숭산문(德崇山門)의 사리를 모시지 않는 전통이 만공 선사에서 시작되어, 이 탑에도 사리가 봉안되어 있지 않다. 〈만공탑〉은 매우 독특한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가장 위쪽의 구형(球形)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6각의 평면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하층기단(下層基壇)의 6개 모서리와 6개 면은 사생육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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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청규 현판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의 덕숭산(德崇山)에 소재하는 수덕사(修德寺)는 조계종 제7교구의 본사이면서 8대 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소재하는 큰 사찰이다. 또한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와 그 제자인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선사를 필두로 근세 이래 침체를 이루었던 한국 선불교 중흥의 중심적 역할을 하여 온 도량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덕사 및 부속 암자에는 선승(禪僧)들은 물론 근현대기 유명 서가(書家)들의 필적이 담긴 현판이 다수 소재하고 있다. 만공 선사가 1943년에 쓴 〈덕... -
전월사전월사(轉月舍)는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께서 말년을 보내신 요사(寮舍) 건물이다. 수덕사 중심 영역의 북동쪽 산속에 남동향으로 자리하며, 〈전월사(轉月舍)〉 편액이 걸린 건물을 포함하여 모두 2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덕숭산 수덕사 사적비(德崇山修德寺事蹟碑)〉(2002)에 따르면, 전월사는 1940년 만공 스님의 손상좌 벽초 경선(碧超鏡禪, 1899~1986) 스님이 세운 것이다. 만공 스님께서 국권회복을 위한 1000일 기도를 마친 뒤 간월암(看月庵)에서 전월사로 돌아온 지 3일 만에 광복 소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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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대 경허 성우 진영금선대(金仙臺) 인법당 내부 정면 벽에 두 점의 진영(眞影)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정면 벽을 바라봤을 때, 왼쪽에 있는 그림이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9~1912) 스님의 모습을 그린 진영이다. 그림에서 스님은 푸른 방석 위에 회색 장삼(長衫)과 붉은색 가사(袈裟)를 걸치고 정면을 향해 앉았다. 오른손은 지팡이[錫杖]를 쥐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 금빛으로 ‘경허당대선사성우진영(鏡虛儅大禪師惺牛眞影)’이라고 그림 제목을 쓰고, 아래에 검은 글씨로 ‘설산 최광익 그림(雪山 崔光益 寫)’이라고 그림을 그린 작가의 호와 이름을... -
금선대 만공 월면 진영금선대(金仙臺) 인법당 내부 정면 벽에 두 점의 진영(眞影)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정면 벽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있는 그림이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의 모습을 그린 진영이다. 그림에서 스님은 푸른 방석 위에 회색 장삼(長衫)과 붉은 바탕 금란가사(金襴袈裟)를 걸치고, 왼쪽으로 살짝 틀어서 앉았다. 오른손은 금강저(金剛杵)를 쥐었다. 그림 속 금란가사와 똑같이 생긴 가사가 현재 수덕사근역성보관에 소장되어 있다. 바로 만공 스님이 쓰시던 25조 금란홍가사이다. 이 가사는 초화문(草花紋)이 수놓아진... -
견성암 아미타오존도견성암 관음전(觀音殿)은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주존(主尊)로 모시고 예불을 드리는 전각이다. 관음전 내부 법당에는 〈관음보살좌상(觀音菩薩坐像)〉과 〈탄생불입상(誕生佛立像)〉을 비롯하여 〈아미타오존도(阿彌陀五尊圖)〉,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1931), 〈신중도(神衆圖)〉, 〈산신도(山神圖)〉 등 불화 5점과 불교 의식을 위한 〈소종(小鐘)〉이 봉안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아미타오존도〉는 불단 중앙에 봉안된 〈관음보살좌상〉의 후불도(後佛圖)로 정면 중앙 벽에 봉안되어 있다. 이 불화는 액자 형식으로 제작되었으며, 그... -
견성암 신중도〈신중도(神衆圖)〉는 불보살(佛菩薩)을 외호하고 불교를 지켜주는 신들[神衆]을 그린 불화이다. 지금 견성암 관음전(觀音殿)에는 2점의 〈신중도〉가 봉안되어 있는데, 한 점은 법당 전면 벽에, 다른 한 점은 오른쪽 벽에 봉안되어 있다. 두 점의 〈신중도〉 가운데, 오른쪽 벽에 봉안된 작품은 1925년 제작된 불화이다. 이 불화는 충남 연기군에 사는 인물 장(張)씨가 돌아가신 어머니 안(安)씨의 영가(靈駕)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화기(畵記) 끝에 ‘이 공덕으로 모든 중생이 극락국에 태어나 무량수불(無量壽佛)을 뵙고, 불도(... -
비구니도흡불망비〈비구니 도흡불망비(比丘尼道洽不忘碑)〉는 자연 암반을 비좌(碑座)로 삼고, 규형(圭形) 비신(碑身)을 꽂아놓은 형태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견성암선원 대공덕주 도흡니 불망비(見性庵禪院大功德主道洽尼不忘碑)’라고 세로로 글씨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망선옹사 비구니 정민 영가(亡先翁師比丘尼定敏靈駕)’, ‘망선은사 비구니 시○ 영가(亡先恩師比丘尼時○靈駕)’, ‘망부 안동권씨보광 영가(亡父安東權氏普光靈駕)’, ‘망모 문화류씨만덕화 영가(亡母文化柳氏萬德華 靈駕)’ ‘동왕극락상품지대원(同往極樂上品之大願)’이라고 새겨져 있다. 도흡... -
소장품: 거문고만공스님께서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이강(李堈)공 의친왕(義親王)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전해지는 거문고이다. 뒷면에는 조선 후기의 대감식안(大鑑識眼)이었던 육교 이조묵(李租黙 1792~1840)이 1837년에 쓴 초서로 된 찬문(撰文)과 만공스님의 게송(偈頌)이 새겨져 있다. 찬문에는 이 거문고가 본래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1352~1374) 때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보유하고 있는 소설가 최인호(1945~2013)의 1993년 4권으로 엮은 작품 『길 없는 길』의 1권 제목이 「... -
만공대선사 탄신다례만공대선사(1871년 음력 03월 07일 탄생)의 탄신다례는 덕숭총림 수덕사 내 정혜사에서 매년 음력 03월 07일 오전 10시에 봉행한다. 만공대선사의 탄신다례에는 7교구 본사 및 말사 그리고 각 사찰이 참여하고 정혜사에서 봉행한다. 다례 후에는 금선대 만공대선사 진영 참배, 만공탑 참배가 진행된다. -
만공대선사 열반다례만공대선사(1946년 음10월 20일 열반)를 추모하는 열반다례는 덕숭총림 수덕사 내 정혜사에서 매년 음력 10월 20일 오전 10시에 봉행한다. 만공대선사의 열반다례에는 7교구 본사 및 말사 그리고, 각 사찰이 참석하고 정혜사에서 봉행한다. 다례 후에는 금선대 만공대선사 진영 참배, 만공탑 참배가 진행된다. -
1933년 상량문1933년에 작성된 상량문에는 대중 스님들이 기거하거나 공부하는 절 내의 큰 방인 판도방(判道房)의 깨지고 무너진 것을 살펴보다가, 가경(嘉慶) 2년 3월 13일 오시(午時, 11시~1시)에 상량한 것이라는 기록을 발견한 일이 적혀 있다. 그래서 기초을 다지고 기둥을 세워, 같은 해 4월 13일 묘시(卯時, 5시~7시)에 상량하였는데, 이 때는 양력으로 소화 8년 5월 6일이며 당시 주실은 만공 스님이었다. 목편수 김중호(金重鎬)와 부편수 윤세근(尹世根) 등이 참여하였다. 번역문 상량문 불기 2960년 계유 3월초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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