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성우(鏡虛惺牛) 스님은 근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서 중생 교화와 불교 중흥에 이바지한 위대한 선승(禪僧)이다.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중흥조로 출현하여 무애자재로운 생활 속에서 전등(傳燈)의 법맥을 이으며, 선불교(禪佛敎)를 진작시킨 혁명가이자 대승(大乘)의 실천자였다.
스님의 속명은 송동욱(宋東旭), 법명은 성우(惺牛), 법호는 경허(鏡虛)이다. 본관은 여산(廬山)으로 1846년 전주 자동리에서 부친 송두옥 모친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9세에 경기도 과천 청계사(淸溪寺)로 출가하여 계허(桂虛, 생몰년 미상) 스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절에 와있던 박 거사(居士)에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우고 기초적인 불교 교리를 익혔다. 이후 당시 교계의 태두였던 동학사(東鶴寺)의 만화(萬化普善, 1850~1919) 강백(講伯)에게 천거되어 불교 경론을 비롯해 영호남 강원에서 불교의 일대시교(一代時敎) 뿐 아니라 유서(儒書)와 노장(老莊) 등의 사상을 고루 섭렵하였다. 23세에 스승 만화의 뒤를 이어 동학사 강백으로 추대되었다. 31세 되던 1876년 속퇴한 은사(恩師) 계허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전염병이 도는 마을을 지나다,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 문자 공부가 죽음의 두려움을 조금도 없애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오로지 당나라 때 선사(先師) 영운 지근(靈雲志勤, 생몰년 미상)의 ‘여사미거 마사도래(나귀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 화두를 들고 정진하던 중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 '는 말을 듣고 확철대오(確徹大悟)하니, 1879년 34세 때였다.
35세인 1880년 봄에 연암산 천장사에 들어가 오후 보림(保任)에 들어가니, 이듬해 6월 활연대오(豁然大悟)하여 오도송(悟道頌)를 불렀다.[1]홀연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자(忽聞人語無鼻孔) / 문득 삼천세계가 나임을 깨달았노라(頓覺三千是我家) / 유월이라 연암산 아랫길에(六月鷰巖山下路) / 농부들이 한가로이 태평가를 부르네(野人無事太平歌) 이로부터 20년간 서산·예산·당진 사찰을 비롯해 계룡산·속리산 등 호서 지방 사찰[2]서산 연암산 천장사, 예산 덕숭산 수덕사·정혜사, 서산 상왕산 개심사·문수사, 도비산 부석사, 공주 태화산 마곡사·묘각사·칠갑산 장곡사, 예산 대련사, 아산 봉곡사, 금산 보석사·태고사, 백마강변 영은사, 당진 영탑사, 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 속리산 법주사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키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1898년부터 1903년까지 부산 범어사 강사(講師)로 초청받고, 가야산 해인사 조실(祖室)로, 조계산 송광사를 비롯해 지리산 실상사 등 영호남 지방에 선원(禪院)을 개설하고 선풍을 드날렸다. 스님은 해인사에서 수선사를 창설하고〈결동수정혜동생도솔동불과계사문(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佛果戒社文)〉을 지어 결사운동을 주장하고,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를 편찬, 한문 혼용인 <참선곡(參禪曲)>, 순 한글인 〈법문곡〉, 〈중노릇 하는 법〉 등을 지어 선풍을 진작하는 등 선·교학에 능통하였다.
1904년 안변 석왕사의 5백 나한 개분 불사의 증명(證明) 법사로 참여한 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 후 스님의 행적은 머리를 기른 채 갓을 쓰고 함경북도 삼수갑산(三水甲山)과 강계 등지를 다니면서 때론 시장에서 행인으로, 혹은 박난주(朴蘭洲)나 박진사(朴進士)라는 가명으로 서당을 개설하여 훈장을 하였다는 등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1912년 4월 25일 세수 67, 법랍 58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고 한다. 입적 직전 써 놓았다는 열반 게송 4행이 전해 온다.[3]마음만 홀로 둥글어(心月孤圓) / 그 빛 만상을 삼켰어라(光呑萬象). / 빛과 경계 다 공한데(光境俱忘) / 다시 이 무슨 물건이리오(復是何物).
스님의 법제자에는 만공 월면(滿空月面, 1861~1946), 혜월 혜명(慧月慧明, 1861~1937), 수월 음관(水月音觀, 1855~1928), 혜봉(慧峰龍河, 1874~1956), 한암 중원(漢巖重遠, 1876~1951), 침운 현주(枕雲玄住, 생몰년 미상) 스님이 있고, 법하에 백학명(白鶴鳴, 1867~1929), 김남천(金南泉, 1900년경~미상), 진진응(陳震應, 震應慧燦, 1873~1942), 박태평(생몰년 미상), 제산 정원(霽山淨圓, 1862~1930) 스님 등이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홀연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자(忽聞人語無鼻孔) / 문득 삼천세계가 나임을 깨달았노라(頓覺三千是我家) / 유월이라 연암산 아랫길에(六月鷰巖山下路) / 농부들이 한가로이 태평가를 부르네(野人無事太平歌)
- 주석 2 서산 연암산 천장사, 예산 덕숭산 수덕사·정혜사, 서산 상왕산 개심사·문수사, 도비산 부석사, 공주 태화산 마곡사·묘각사·칠갑산 장곡사, 예산 대련사, 아산 봉곡사, 금산 보석사·태고사, 백마강변 영은사, 당진 영탑사, 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 속리산 법주사
- 주석 3 마음만 홀로 둥글어(心月孤圓) / 그 빛 만상을 삼켰어라(光呑萬象). / 빛과 경계 다 공한데(光境俱忘) / 다시 이 무슨 물건이리오(復是何物).
관련기사
-
경허의 염불수행경허는 근현대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선사로서 선뿐 아니라 염불수행시 잡념없이 오로지 한 생각으로 염불할 것을 강조했다. -
조선불교통사-지리산 화엄사 진진응선사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노왕옥후석탑재도(露王玉后石塔載到) 조에 수록되어 있다. 수로왕후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파사석탑을 싣고 온 것에 대한 내용이다. 『지리산지(智異山誌)』는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의 저술로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인용된 문장에 의하면, 내용은 ‘지리산(地利山)’의 명칭과 지리산 봉우리에 얽힌 불교 관련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문 露王玉后石塔載到 智異山華嚴寺陳震應禪師。著有智異山誌。頗多叅考者。故錄之于左。 智...
-
경허집-상원암 선실 설치를 청하는 글상원암 선실 설치를 청하는 글은 『경허집(鏡虛集)』 서문(序文)편에 수록된 화엄사 관련 산문이다. 내용은 상원암 선실이 화엄사 창건 때부터 있었는데 교화를 주도할 사람이 없어 운영이 중단되었다가 1900년(광무 4) 청하(淸霞) 장로가 선회(禪會)를 다시 개최하였으니, 이후에도 선회를 이어가도록 권한다는 것이다. 화엄사 소속 암자와 선실 운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경허집(鏡虛集)』은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9~1912)스님의 문집이다. 스님은 법호가 경허, 법명이 성우, 속성은 송씨(宋氏), 본관은 여산(礪山)...
-
경허집-대연 화상 영찬「대연 화상 영찬(大淵和尙影賛)」은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9~1912) 스님의 『경허집(鏡虛集)』에 수록된 시이다. 내용은 문도인 호은 스님이 대연 화상의 진영을 가야산 해인사에 봉안하였고, 그 진영에 대한 영찬이다. 호은 스님은 16세에 남해 용문사 경허 능언(景虛能彦)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한편 『경허집』의 「금우 화상 영찬(錦雨和尙影賛)」에서는 호은의 은사가 금우 화상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호은 스님이 금우 화상에게 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서룡 화상 행장(瑞龍和尙行狀)’에서는 호은 스님이 서룡...
-
진응 혜찬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법호가 진응, 법명이 혜찬, 속성이 진씨(陳氏)이다. 15세에 화엄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화엄사, 선암사 등지에서 경론을 수학하다가 24세에 응암 치영(應庵致永)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스님은 1910년 박한영(朴漢永)·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종정(宗正) 회광(晦光)의 일본 조동종(曹洞宗) 연합 맹약 체결에 반대해 이를 저지하였다. 1913년 2월 쌍계사에서 호은 문성(虎隱文性) 스님에게 구족계와 대승계를 받았다. 이를 인연으로 진응 스님은 화엄...
-
천장사 염궁선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에 속한 천장사의 선원이다. -
경허 성우(鏡虛惺牛)만공(滿空)·혜월(慧月)·수월(水月)의 스승이며,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다. -
혜월 혜명(慧月慧明)조선 말기 경허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로 대구와 부산에서 선풍을 펼친 승려이다. -
한암 중원(漢巖重遠)경허스님의 법을 이은 고승으로 일제 강점기때 봉은사 조실을 지내고, 조계종 초대 종정을 역임한 승려이다. -
승탑원수덕사 승탑원(僧塔院)은 일주문(一柱門)을 지나서 동쪽 능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송림(松林) 가운데 조성되어 있다. 승탑원의 정중앙에는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6~1912) 대선사의 탑과 경허 성우 대선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중국 법안종(法眼宗)의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 선사의 ‘콧구멍 없는 소(牛無鼻空處)’라는 법문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누워있는 소[臥牛]가 조각되어 있다. 경허 성우 대선사의 탑은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鷰谷寺 東 僧塔)〉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허 성우 대선사탑 뒤... -
경허대선사탑경허 성우(鏡虛惺牛, 1846~1912) 대선사의 탑은 수덕사 승탑원의 중앙에 건립되어 있으며, 팔각당(八角堂) 형태로 현대에 제작된 작품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 시기에 제작된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鷰谷寺 東 僧塔)〉을 모방한 것으로, 기단부터 옥개석까지 용(龍)과 사자(獅子), 팔부중(八部衆), 가릉빈가(迦陵頻伽), 사천왕(四天王), 비천(飛天)을 화려하게 새겨 놓았다. 이 탑의 곁에는 〈와우상(臥牛像)〉이 별도로 조각되어 있는데, 경허 성우 대선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중국 법안종(法眼宗)의 법안 문익(法眼文益,... -
덕숭총림 현판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의 덕숭산(德崇山)에 소재하는 덕숭총림(德崇叢林) 수덕사(修德寺) 경내의 여러 건물에는 원담 진성(園潭 眞性, 1926~2008) 스님이 쓴 현판이 다수 걸려있다. 수덕사는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 선사가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키고 그 제자인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스님이 선지를 이어받으며 한국 선불교의 큰 법맥을 형성한 도량이다. 원담 진성 스님은 만공 선사로부터 전법을 받은 제자로서 4대, 5대, 7대 수덕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명부전·범종각·법고각을 신축... -
무이당무이당(無二堂)은 수덕사 대웅전(大雄殿) 영역 하단(下段) 조인정사(祖印精舍)와 범종각(梵鍾閣)과 법고각(法鼓閣)과 함께 서쪽 영역을 이루고 있으며, 범종각 뒤 편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 종무소로 사용하는 조인정사 건물과는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본래 2000년에 새로 짓고 무이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물이지만 지금 건물 전면에는 〈조인정사(祖印精舍)〉 편액과 〈조인선원(祖印禪院)〉 편액이 걸려있고, 현재 수덕사 조인선원의 선방(禪房)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인정사〉 편액 글씨는 서예가 성재 김태석(惺齋金台錫, 1875~195... -
덕숭청규 현판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의 덕숭산(德崇山)에 소재하는 수덕사(修德寺)는 조계종 제7교구의 본사이면서 8대 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소재하는 큰 사찰이다. 또한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와 그 제자인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선사를 필두로 근세 이래 침체를 이루었던 한국 선불교 중흥의 중심적 역할을 하여 온 도량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덕사 및 부속 암자에는 선승(禪僧)들은 물론 근현대기 유명 서가(書家)들의 필적이 담긴 현판이 다수 소재하고 있다. 만공 선사가 1943년에 쓴 〈덕... -
금선대금선대(金仙臺)는 수덕사의 여러 암자 중 하나로 수덕사 중심예불영역 북쪽 산중에 자리하고 있다. 수덕사의 암자는 견성암, 극락암, 금선대, 선수암, 소림초당, 전월사, 정혜사, 향운각, 환희대로 구성되며 중심예불영역 북서쪽 산중에 자리하고 있다. 정혜사 남쪽 용각대 절벽 밑에 1905년에 만공선사(滿空禪師, 1871~ 1946)가 토굴(土窟)로 지은 것으로 만공스님이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진여문을 통해 진입한다. 1915년에는 헐어내고 새로 건물을 지었다. 1946년에 만공 선사 열반 후 영각(影閣)으로 고쳐서 경허스님(鏡虛,... -
금선대 경허 성우 진영금선대(金仙臺) 인법당 내부 정면 벽에 두 점의 진영(眞影)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정면 벽을 바라봤을 때, 왼쪽에 있는 그림이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9~1912) 스님의 모습을 그린 진영이다. 그림에서 스님은 푸른 방석 위에 회색 장삼(長衫)과 붉은색 가사(袈裟)를 걸치고 정면을 향해 앉았다. 오른손은 지팡이[錫杖]를 쥐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 금빛으로 ‘경허당대선사성우진영(鏡虛儅大禪師惺牛眞影)’이라고 그림 제목을 쓰고, 아래에 검은 글씨로 ‘설산 최광익 그림(雪山 崔光益 寫)’이라고 그림을 그린 작가의 호와 이름을... -
금선대 만공 월면 진영금선대(金仙臺) 인법당 내부 정면 벽에 두 점의 진영(眞影)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정면 벽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있는 그림이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의 모습을 그린 진영이다. 그림에서 스님은 푸른 방석 위에 회색 장삼(長衫)과 붉은 바탕 금란가사(金襴袈裟)를 걸치고, 왼쪽으로 살짝 틀어서 앉았다. 오른손은 금강저(金剛杵)를 쥐었다. 그림 속 금란가사와 똑같이 생긴 가사가 현재 수덕사근역성보관에 소장되어 있다. 바로 만공 스님이 쓰시던 25조 금란홍가사이다. 이 가사는 초화문(草花紋)이 수놓아진... -
경허대선사 열반다례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경허대선사(1912년 음04월 24일 열반)를 추모하는 열반다례는 덕숭총림 수덕사 대웅전에서 매년 그의 열반일에 맞추어 오전 10시에 봉행한다. 경허대선사의 열반다례에는 7교구 본사 및 말사 그리고 각 사찰이 참여한다. -
경허대선사 탄신다례 및 합동다례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경허대선사(1849년 음 08월 24일 탄생)의 탄신다례는 덕숭총림 수덕사 대웅전에서 매년 음력 08월 24일에 봉행하며, 이때 열반하신 여러 스님들의 열반다례를 합동으로 봉행한다. 경허대선사 탄신다례와 합동다례에는 7교구 본사 및 말사 등이 참여한다. -
경허집 소개
-
경허집 문헌속으로
더보기 +
불교용어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
-
-
-
-
경허성우선사연보
-
경허 부처의 거울 중생의 허공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