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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성우(1849~1912)

경허 성우(鏡虛惺牛) 스님은 근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서 중생 교화와 불교 중흥에 이바지한 위대한 선승(禪僧)이다.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중흥조로 출현하여 무애자재로운 생활 속에서 전등(傳燈)의 법맥을 이으며, 선불교(禪佛敎)를 진작시킨 혁명가이자 대승(大乘)의 실천자였다. 스님의 속명은 송동욱(宋東旭), 법명은 성우(惺牛), 법호는 경허(鏡虛)이다. 본관은 여산(廬山)으로 1846년 전주 자동리에서 부친 송두옥 모친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9세에 경기도 과천 청계사(淸溪寺)로 출가하여 계허(桂虛, 생몰년 미상) 스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절에 와있던 박 거사(居士)에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우고 기초적인 불교 교리를 익혔다. 이후 당시 교계의 태두였던 동학사(東鶴寺)의 만화(萬化普善, 1850~1919) 강백(講伯)에게 천거되어 불교 경론을 비롯해 영호남 강원에서 불교의 일대시교(一代時敎) 뿐 아니라 유서(儒書)와 노장(老莊) 등의 사상을 고루 섭렵하였다. 23세에 스승 만화의 뒤를 이어 동학사 강백으로 추대되었다. 31세 되던 1876년 속퇴한 은사(恩師) 계허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전염병이 도는 마을을 지나다,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 문자 공부가 죽음의 두려움을 조금도 없애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오로지 당나라 때 선사(先師) 영운 지근(靈雲志勤, 생몰년 미상)의 ‘여사미거 마사도래(나귀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 화두를 들고 정진하던 중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 '는 말을 듣고 확철대오(確徹大悟)하니, 1879년 34세 때였다. 35세인 1880년 봄에 연암산 천장사에 들어가 오후 보림(保任)에 들어가니, 이듬해 6월 활연대오(豁然大悟)하여 오도송(悟道頌)를 불렀다.[1]홀연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자(忽聞人語無鼻孔) / 문득 삼천세계가 나임을 깨달았노라(頓覺三千是我家) / 유월이라 연암산 아랫길에(六月鷰巖山下路) / 농부들이 한가로이 태평가를 부르네(野人無事太平歌) 이로부터 20년간 서산·예산·당진 사찰을 비롯해 계룡산·속리산 등 호서 지방 사찰[2]서산 연암산 천장사, 예산 덕숭산 수덕사·정혜사, 서산 상왕산 개심사·문수사, 도비산 부석사, 공주 태화산 마곡사·묘각사·칠갑산 장곡사, 예산 대련사, 아산 봉곡사, 금산 보석사·태고사, 백마강변 영은사, 당진 영탑사, 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 속리산 법주사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키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1898년부터 1903년까지 부산 범어사 강사(講師)로 초청받고, 가야산 해인사 조실(祖室)로, 조계산 송광사를 비롯해 지리산 실상사 등 영호남 지방에 선원(禪院)을 개설하고 선풍을 드날렸다. 스님은 해인사에서 수선사를 창설하고〈결동수정혜동생도솔동불과계사문(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佛果戒社文)〉을 지어 결사운동을 주장하고,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를 편찬, 한문 혼용인 <참선곡(參禪曲)>, 순 한글인 〈법문곡〉, 〈중노릇 하는 법〉 등을 지어 선풍을 진작하는 등 선·교학에 능통하였다. 1904년 안변 석왕사의 5백 나한 개분 불사의 증명(證明) 법사로 참여한 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 후 스님의 행적은 머리를 기른 채 갓을 쓰고 함경북도 삼수갑산(三水甲山)과 강계 등지를 다니면서 때론 시장에서 행인으로, 혹은 박난주(朴蘭洲)나 박진사(朴進士)라는 가명으로 서당을 개설하여 훈장을 하였다는 등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1912년 4월 25일 세수 67, 법랍 58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고 한다. 입적 직전 써 놓았다는 열반 게송 4행이 전해 온다.[3]마음만 홀로 둥글어(心月孤圓) / 그 빛 만상을 삼켰어라(光呑萬象). / 빛과 경계 다 공한데(光境俱忘) / 다시 이 무슨 물건이리오(復是何物). 스님의 법제자에는 만공 월면(滿空月面, 1861~1946), 혜월 혜명(慧月慧明, 1861~1937), 수월 음관(水月音觀, 1855~1928), 혜봉(慧峰龍河, 1874~1956), 한암 중원(漢巖重遠, 1876~1951), 침운 현주(枕雲玄住, 생몰년 미상) 스님이 있고, 법하에 백학명(白鶴鳴, 1867~1929), 김남천(金南泉, 1900년경~미상), 진진응(陳震應, 震應慧燦, 1873~1942), 박태평(생몰년 미상), 제산 정원(霽山淨圓, 1862~1930) 스님 등이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홀연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자(忽聞人語無鼻孔) / 문득 삼천세계가 나임을 깨달았노라(頓覺三千是我家) / 유월이라 연암산 아랫길에(六月鷰巖山下路) / 농부들이 한가로이 태평가를 부르네(野人無事太平歌)
  • 주석 2 서산 연암산 천장사, 예산 덕숭산 수덕사·정혜사, 서산 상왕산 개심사·문수사, 도비산 부석사, 공주 태화산 마곡사·묘각사·칠갑산 장곡사, 예산 대련사, 아산 봉곡사, 금산 보석사·태고사, 백마강변 영은사, 당진 영탑사, 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 속리산 법주사
  • 주석 3 마음만 홀로 둥글어(心月孤圓) / 그 빛 만상을 삼켰어라(光呑萬象). / 빛과 경계 다 공한데(光境俱忘) / 다시 이 무슨 물건이리오(復是何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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