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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승 혜현

혜현(惠現)은 삼국시대 수덕사에서 불경을 강의하고 독송하였다는 백제의 스님이다. 혜현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속고승전(續高僧傳)』, 『신수과분육학승전(新修科分六學僧傳)』, 『홍찬법화전(弘贊法華傳)』, 『법화전기(法華傳記)』 등 동아시아 고승들의 전기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승전(僧傳)에서 확인된다. 한국과 중국 자료에 기록된 혜현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혜현은 백제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였으며, 『법화경(法華經)』을 업으로 삼아 독송하였다. 기도로 복을 빌면 영험한 감응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삼론(三論)[1]삼론(三論)은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 150?~250?)가 저술한 『중론(中論)』과 『십이문론(十二門論)』, 그의 제자인 아리야데바(Āryadeva, 提婆, 170?~270?)가 저술한 『백론(百論)』의 세 논서를 말한다. 이 세 논서 모두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344~413)에 의해 번역되었다(https://buddhaland.dongguk.edu/dictionary/8526).에 대한 강의를 듣고 곧 들은 대로 공부하여 신명에 통하였다. 처음에는 백제의 북부 수덕사에 살았으며, 대중이 있으면 강의하고 없으면 독송하였다.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소란스러워지자, 산이 험준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어려운 남방[2]고려시대 일연에 의해 저술된 『삼국유사』에는 강남(江南)으로 기록되어 있다.의 달라산(逹拏山)으로 갔다. 혜현은 달라산에서 고요히 앉아 수행하다가 정관(貞觀)[3]정관(貞觀)은 중국의 당(唐) 태종 이세민의 연호로 627년부터 649년까지이다. 초, 58세에 입적하였다. 함께 수행하던 이가 그의 시신을 석굴에 안치했는데, 호랑이가 다 먹고 뼈와 혀만 남았다. 그 혀는 3년이 지나도 붉고 부드러웠다. 후에 자줏빛으로 변하였으며 단단하여 마치 돌과 같았다.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석탑에 모시고 참배하였다. 혜현은 중국에 유학 가지 않고 고요히 물러나 생을 마쳤으나,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전기가 저술되었고[4]당나라 초기에 도선(道宣, 596~667)이 편찬한 『속고승전(續高僧傳)』에 입전(入傳)되었다. 『속고승전』에는 『고승전』이 편찬된 519년 이후부터 당나라 초기까지 150여 년 사이에 활약한 스님 340명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에서도 명성이 드러났다.
관련주석
  • 주석 1 삼론(三論)은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 150?~250?)가 저술한 『중론(中論)』과 『십이문론(十二門論)』, 그의 제자인 아리야데바(Āryadeva, 提婆, 170?~270?)가 저술한 『백론(百論)』의 세 논서를 말한다. 이 세 논서 모두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344~413)에 의해 번역되었다(https://buddhaland.dongguk.edu/dictionary/8526).
  • 주석 2 고려시대 일연에 의해 저술된 『삼국유사』에는 강남(江南)으로 기록되어 있다.
  • 주석 3 정관(貞觀)은 중국의 당(唐) 태종 이세민의 연호로 627년부터 649년까지이다.
  • 주석 4 당나라 초기에 도선(道宣, 596~667)이 편찬한 『속고승전(續高僧傳)』에 입전(入傳)되었다. 『속고승전』에는 『고승전』이 편찬된 519년 이후부터 당나라 초기까지 150여 년 사이에 활약한 스님 340명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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