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智明)은 수덕사를 창건한 백제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명’이라는 스님이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서 확인되기는 하지만, 수덕사 창건과 관련지어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다음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해동고승전』에 기록된 지명 스님의 행적이다.
『삼국유사』에서 지명(知命) 스님은 백제 무왕(武王, 재위 600~641)이 왕위에 오를 때 또 미륵사를 지을 때,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아직 왕이 되기 전의 서동(薯童)이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 지명 법사(知命法師)에게 선화공주의 아버지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이 계신 신라 왕궁으로 금을 실어 나를 방법을 물으니, 법사가 신통한 능력으로 하룻밤 사이 신라 왕궁에 금을 보냈다는 이야기에서 등장한다. 두 번째는 용화산 아래 큰 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한 것을 계기로 미륵사를 짓고자 할 때 무왕이 지명 법사에게 못을 메우는 방법을 물었더니, 법사가 하룻밤에 산을 무너뜨리고 못을 메워 평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지명(智明) 스님은 585년(진평왕 7) 진(陳)나라에 유학갔다가 602년(진평왕 24) 사신을 따라 신라로 귀국하였다. 진평왕은 지명의 계행(戒行)을 존경하여 대덕(大德)으로 삼았다.
『해동고승전』에는 지명(智明)이 신통한 지혜로 깨달은 신라 고승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585년 진나라에 갔다가 602년 귀국하였는데, 당시 왕이 스님의 계율을 높이 받들어 대덕으로 삼았다고 한다. 후에 대대덕(大大德)에 올랐지만, 입적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명’이라는 인물은 ‘知命’, ‘智明’으로 확인되고, 백제 무왕, 신라 진평왕 때 활동한 고승임을 알 수 있다. 지명 스님 기록에 대해서는 다른 인물로 보는 견해와 같은 인물로 보는 견해 두 가지가 제기된 바 있다.[1]같은 인물로 보는 견해는 김복순 『한국 고대불교사 연구』(민족사, 2002), 다른 인물로 보는 견해는 노중국, 「백제 무왕과 지명법사」(『한국사 연구』 107, 한국사연구회, 1999) 등이 있다.
수덕사의 창건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백제 스님 혜현(惠現)이 북부 수덕사에서 『법화경(法華經)』을 강독하고 독송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볼 때, 적어도 627년경 이전 백제 수도 부여의 북부에 수덕사가 존재하고 있었음은 확실하다.[2]김영태, 「백제 고찰 수덕사의 사적 고찰」, 『한국불교학』 22, 한국불교학회, 1997, pp.16~21.
관련주석
- 주석 1 같은 인물로 보는 견해는 김복순 『한국 고대불교사 연구』(민족사, 2002), 다른 인물로 보는 견해는 노중국, 「백제 무왕과 지명법사」(『한국사 연구』 107, 한국사연구회, 1999) 등이 있다.
- 주석 2 김영태, 「백제 고찰 수덕사의 사적 고찰」, 『한국불교학』 22, 한국불교학회, 1997, pp.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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