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극선(趙克善, 1595~1658)은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으로, 벼슬이 사헌부 장령(掌令)에 이르렀으며 효행과 학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지금의 예산군 봉산면에서 태어났다. 저서로는 『야곡집』 10권과 『야곡삼관기(冶谷三官記)』가 있다.
그가 남긴 『인재일록(忍齋日錄)』과 『야곡일록(冶谷日錄)』은 조극선이 15세 때인 1609년부터 41세 되던 때인 1635년까지 기록한 일기이다. 특히 『인재일록』은 그가 덕산현에서 생활하고 성장하면서 쓴 생활일기이자 성장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일기에서 수덕사와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일기에서 수덕사는 주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자 종이나 짚신, 참기름 등 생활용품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다만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모습이 아닌 종이 생산을 위해서 조극선이 닥나무를 직접 공수해준다거나, 함께 공부하는 스님들이 그의 가르침에 감사의 의미로 주는 등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이 일기에 수덕사를 기반으로 생활했던 스님들도 등장하는데, 천진(天眞) 스님과 순(淳) 스님, 처봉(處峰) 스님, 쌍욱(雙旭) 스님이 대표적이다. 또한 수덕사 뿐만 아니라 근처의 다른 사찰들과 스님들도 등장하는 바, 17세기 충남 지역의 사찰과 스님들에 대한 연구에도 중요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
○인재일록 제5(忍齋日録 苐五) / 광해군 15년(1622, 임술) 9월 1일
둘째 형이 오늘 수덕사로 가서 잤다.
○인재일록 제5(忍齋日録 苐五) / 인조 1년(1623, 계해) 6월 8일
저녁에 또 안 조카와 함께 오셔서 내일 수덕사로 함께 가자고 약조하였다.
○인재일록 제5(忍齋日録 苐五) / 인조 1년(1623, 계해) 6월 9일
수덕사에 갔다가 돌아왔다. 【새벽에 출발했다. 둘째 형과 함께 갔다. 또 아랫집에서 닥나무를 싣고 안 조카와 함께 갔다. 수덕사에 도착해서 안 조카는 잠깐 쉬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들은 중에게 아침을 지어 올리게 하여 먹었다. 윤득은이 지금 박이 살았던 곳에 이사왔는데, 수덕사에서 5리 정도 떨어져 있어 중을 보내 초대하고 담화를 나누었다. 드디어 닥나무 껍질 20근을 주었다. 주지 승 천진이 차분히 붙잡으며 앉았다. 오후가 되자, 중들이 밥을 지어 점심을 올렸다. 돌아오는 길에 둘째 형을 만나 윤헌국에게 절을 올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저녁이 되었다.】
○인재일록 제5(忍齋日録 苐五) / 인조 1년(1623, 계해) 9월 28일
천진 상인이 와서 배알하였다.【수덕사의 중이 병환 중이라 종이를 만들수가 없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암자의 중에게 그 일을 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암자의 중이 아직 오지 않아 천진 상인이 먼저 와서 흰 종이 5권을 내어주고 갔다.】
○야곡일록 제1(冶谷日錄 苐一) / 인조 2년(1624, 갑자) 4월 29일
또 상암의 중을 보내 수덕사에 종이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야곡일록 제1(冶谷日錄 苐一) / 인조 2년(1624, 갑자) 5월 4일
순 스님이 참기름 반 합을 쓰라고 보내주었다. 또 사람을 수덕사로 보내 흰 종이 한 권과 짚신 2죽을 받아오게 하였다. 처봉 상인이 한 발의 종이 한 묶음과 짚신 1죽을 보내주었다.
○야곡일록 제3(冶谷日錄 苐三) / 인조 6년(1628, 무진) 3월 14일
아침을 먹은 후에 둘째형이 수덕사에 가서 머문다고 알려왔다.
○야곡일록 제3(冶谷日錄 苐三) / 인조 7년(1629, 기사) 윤4월 16일
수덕사의 승 천진이 배알하러 왔다. 흰 종이 15장을 가져와 아버지께 드렸다.
○야곡일록 제3(冶谷日錄 苐三) / 인조 7년(1629, 기사) 6월 16일
또 기보가 일찍이 닥나무 껍질 6근을 보내어 종이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였는데, 몸소 수덕사로 ■■■■ 가져다주었다. 중이 이미 윤달 10일■■에 흰 종이 4권을 가지고 돌아왔고, 기보가 오늘 또 흰 종이 1권·저품질 종이 15장을 보내주었다. 이 흰 종이와 저품질 종이 5장은 내가 사용할 것이다.
○야곡일록 제4(冶谷日錄 苐四) / 인조 8년(1630, 경오) 5월 3일
더위에 나왔더니 몸이 매우 피곤하고 말도 굶주려서 수덕사에 들어가 휴식하며 말을 먹였다. 중들은 또 식사를 차려다 주었다.
○야곡일록 제4(冶谷日錄 苐四) / 인조 9년(1631, 신미) 11월 5일
저녁밥을 먹은 후에 수덕사로 가서 자고 싶어졌으나, 득반이 만류하여 가지 않았다.
○야곡일록 제4(冶谷日錄 苐四) / 인조 9년(1631, 신미) 11월 6일
수덕사를 지나가는데 중들이 종이를 제조하려 한다고 하였다. 초암의 중 닥나무를 짊어지고 도착했다.
○야곡일록 제4(冶谷日錄 苐四) / 인조 9년(1631, 신미) 윤11월 27일
이에 수덕사에서 종이를 가져오게 했다. 쌍욱이 또 배우러 왔다. 종이는 다만 3권만 받아왔다.
○야곡일록 제4(冶谷日錄 苐四) / 인조 9년(1631, 신미) 12월 29일
잠시 수덕사로 들어가 중들을 불러 일을 이야기하였다.
○야곡일록 제5(冶谷日錄 苐五) / 인조 10년(1632, 임신) 3월 9일
수덕사의 승 천진이 와서 흰 종이 8권을 바쳤는데, 전에 받은 닥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원문
○『忍齋日録』 苐五 九月 一日
二兄則今日徃棲修德寺
○『忍齋日録』 苐五 六月 八日
夕又與晏姪徃下宅 約以明日偕徃修德寺事而返
○『忍齋日録』 苐五 六月 九日
徃修德寺而返 【晨發過 與二兄偕行 又以下宅馬載楮 而晏姪與之俱 既到修德寺 晏姪少憇 而帰其聘家 吾軰命僧作朝飯以食 尹得殷今移居乃朴 所去此寺五里許 送僧邀之 至打話 遂載量皮楮二十斤以授 首僧天眞從容留坐 到午後 僧軰自作飯 以供㸃心 歸路從二兄 入拜尹公憲國氏 既到家 則日已夕】
○『忍齋日録』 苐五 九月 二十八日
天眞上人來謁 【修德寺僧 以其病患 不能造紙 今始送庵僧推之 庵僧未到 而眞上人先來 姑進以白紙五巻而去】
○『冶谷日錄』 苐一 四月 二十九日
又遣上庵僧責紙地于修德寺 不獲而返
○『冶谷日錄』 苐一 五月 四日
淳師遺以所用眞油半合 又送人于修德寺 推得白紙一巻及草履二部 䖏峯上人送遺常紙一束·草履一部
○『冶谷日錄』 苐三 三月 十四日
食後二兄來告 徃棲于修德寺
○『冶谷日錄』 苐三 閏四月 十六日
修德寺僧天眞過謁 因以白紙十五丈 獻吾父子
○『冶谷日錄』 苐三 六月 十六日
且基甫嘗以皮楮六斤送之 請以造紙■■■■ 躬徃修德寺■■■■■■■■■授之 僧曽扵閠月十日■■■■白紙四巻已歸之 基甫今日又送白紙一巻·皮紙十五丈 此白紙及皮紙五丈 吾將用之
○『冶谷日錄』 苐四 五月 三日
冒炎 身甚困 馬且飢 遂入修德寺休息秣馬 僧軰且供飯
○『冶谷日錄』 苐四 十一月 五日
夕飯後 欲宿于修德寺 爲淂殷㪽挽而止
○『冶谷日錄』 苐四 十一月 六日
過于修德寺 諭僧以造紙之意 草庵僧負楮以至焉
○『冶谷日錄』 苐四 閏十一月 二十七日
仍使取紙于修德寺 雙旭又來學 紙只取三巻
○『冶谷日錄』 苐四 十二月 二十九日
暫入修德寺 召僧語事
○『冶谷日錄』 苐五 三月 九日
修德寺僧天眞來獻白紙八巻 曽授楮所造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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