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각(樓閣)은 사찰에서 대웅전에 이르기 전에 위치하는 건물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누각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이다. 대중들을 위한 법회를 열거나, 조선시대 같은 경우에는 사대부를 위시한 유람객들을 맞이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수덕사에는 취적(翠積)·불운(拂雲)이라는 누각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이 두 누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중수기 현판에는 ‘누각중수(樓閣重修)’라는 기록만 있어 어떤 누각의 중수인지는 알 수 없다. 이 현판의 내용을 살펴보면, 건륭(乾隆) 36년(1771) 신묘(辛卯) 4월에 기록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당시 누각의 중수에 참여했던 시주자와 제작자로 추정되는 스님과 목수가 기록되어 있어 18세기 후반 수덕사에 상존했던 인명들을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번역문
건륭삼십육년신묘사월일누각중수현판
재목대시주 유학 맹씨■■생 양위
대시주 이씨막덕 단신
대시주 거사 성진 양주
대시주 김삼천 양주
대시주전
산인 탄명 단신
최왕금 양주
고덕권 양주
김상위 양주
최수복 양주
거사 도행 양주
김덕봉 양주
산인 사식 단신
거사 법찬 양주
삼강질 정인 해은 법행
공양주겸별좌비구 정경
지전 원오
화주비구 민희 화원 천운헌 양주
화주산인 계연
목수 태일
원문
乾隆三十六年辛卯四月日樓閣重修懸板
材木大施主 幼學 孟氏■■生 兩位
大施主 李氏莫德 單身
大施主 居士 聖眞 兩主
大施主 金三千 兩主
大施主全
山人 坦明 單身
崔㕵金 兩主
高德勸 兩主
金尙位 兩主
崔修福 兩主
居士 道行 兩主
金德奉 兩主
山人 思湜 單身
居士 法贊 兩主
三綱秩 正仁 海訔 法幸
供養主兼別座比丘 正敬
持殿 圓悟
化主比丘 旻希 畫圓 千雲仚 兩主
化主山人 戒演
木手 太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