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근역성보관은 1930년대 수덕사 대웅전 수리 공사 당시에 오가와 게이키치(小川敬吉, 1882~1950)가 수집하여 정리한 기와 이외에도 여러 기와를 소장하고 있다. 그 중 ‘동치9년명(同治九年銘) 암막새’는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많은 글자가 판독이 가능한 상태이다. 이 기와는 새겨진 기록을 따라서 이름지어졌는데 ‘동치9년명’은 1870년이라는 기와 제작 시기를 뜻하고, 암막새는 막새기와 중 암기와라는 뜻이다. 막새기와는 지붕의 가장 끝부분 처마에 설치하는 기와의 이름이다. 막새기와는 일반적인 기와와 달리 끝부분에 길게 면을 덧붙여 빗물이 지붕 안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만든 것으로 이 면에 여러 문양이나 글을 새겨넣기도 한다. 막새기와를 다른 말로 와당(瓦當)이라고도 한다.
기와의 생김새를 보면 중앙에 7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을 새겨 넣고 그 주변 꽃잎 사이에 시계방향으로 2글자씩 12글자를 새겨 넣었다. 연꽃의 꽃잎이 가늘고 길게 표현되어 있어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모습으로 연화문의 후대 변형 문양으로 보고 있다. 기와의 막새면은 아래로 길게 늘어진 포물선 형태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 암막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와에 새겨진 내용을 보면, 오른쪽 제일 윗부분부터 동치 9년 4월이고 6글자가 오른편에 새겨져 있어 서기 1870년 4월에 기와를 만들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때 대웅전 또는 주변 다른 건물의 지붕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화문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는 ‘시○(始○)’, ‘일지(一志)’, ‘와동(瓦同)’이라 6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일지는 스님의 법명으로 보이고, 와동은 기와골을 의미하는 ‘와동(瓦洞)’을 간단하게 적은 것으로 보여 일지스님이 기와를 제작했다는 문맥으로 이해된다. 기와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同治
九年
四月
始○
一志
瓦同
동치 9년 4월
시○ 일지 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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