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수덕사 대웅전 수리 공사 당시에 지붕에서 해체하여 내린 기와 중에는 제작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기와의 제작 연도와 건물의 수리 시점을 알 수 있는 기와가 여러 편 확인되었다. 그 외에도 대웅전 주변에 흩어져 있는 기와 조각 중에는 특정한 시대를 알 수 있는 문양이 남아있는 것도 있어 수덕사 대웅전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30년대 대웅전 수리를 감독한 오가와 게이키치(小川敬吉, 1882~1950)는 대웅전과 주변에서 수집한 기와 조각을 51개로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수집된 기와 조각 중 제작 연도가 기록된 것 중에서 가장 이른 것은 1630년에 제작된 암막새기와 조각이다. 막새기와는 지붕의 가장 끝부분 처마에 설치하는 기와로 평기와라 부르는 일반적인 기와와 달리 끝부분에 길게 면을 덧붙여 빗물이 지붕 안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만든 것으로 이 면에 여러 문양이나 글을 새겨넣기도 한다. 막새기와를 다른 말로 와당(瓦當)이라고도 한다.
1630년에 제작된 이 기와는 기와에 새겨진 연호로 따서 ‘숭정3년명 암막새’라고 이름 붙여 부르고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과 오가와 게이키치의 탁본 자료가 남아있다. 실물은 수덕사근역성보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기와는 전체 모습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오른쪽 윗부분에 둥그런 돌기가 튀어나와 있어 도깨비 눈처럼 생긴 문양이 새겨진 ‘귀목문(鬼目紋)’기와의 한 종류로 짐작된다. 막새면에는 3줄로 글이 새겨져 있는데 시주자와 제작일시, 화주가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와를 통해 1630년에 대웅전의 지붕을 한차례 수리하는데 천진(天眞), 사오(思悟) 두 스님이 화주를 맡고 박향손(朴香孫)이 시주하여 8월에 기와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명문의 김막금(金莫金)이라는 사람의 역할은 명확하지 않은데 박향손과 같은 시주자일 수도 있고 기와를 만든 장인 즉, 와공(瓦工) 의 이름 일 수도 있다. 기와에 새겨진 내용을 아래와 같다.
金莫金
施主 朴香孫
崇禎三年八月日
化主 天眞
思悟
김막금
시주 박향손
숭정3년 8월일
화주 천진
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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