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는 1937~1940년 수리공사 당시 발견된 단청(丹靑)의 모사도(模寫圖)가 소장되어 있다. 이 자료는 공사 당시 벽화 및 단청 모사 등의 작업에 참여하였던 임천(林泉, 1908~1965)에 의하여 작성된 것이다. 1960년에 발표된 임천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외부의 조선시대 벽화를 조사하던 중 벽체 내부에서 고려시대 벽화가 확인되었고 이에 대한 조사 및 모사도 작성을 위하여 공사 비용 증액과 기간의 연장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제작한 모사도의 수량과 전모는 상세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창방 이상의 30여 개의 벽화에 대해 전수 조사를 하였으며, 표층의 벽화와 함께 표하층의 고려시대 단청 및 벽화 조사 및 모사를 시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시대 단청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는 불가능하여, 그 중 몇 가지만을 모사하였다고 한다. 현재 대웅전 내부 대량(大梁)에는 금룡도(金龍圖) 좌우에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단청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단청 역시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임천에 의하여 작성된 이 모사도는 현재 그 원형이 남아 있지 않은 벽화와 단청 문양 일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현재 남아 있는 단청 모사도는 총 18점이며, 모두 내부 단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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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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