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대웅전 수리 관련 공문서는 대웅전에 대한 수리 계획과 공사 승인, 비용, 참여 인원 등에 대한 제반 사항을 기록한 문건이다. 이 문건들은 국립중앙박물관, 국가기록원, 수덕사 근역성보관, 일본 사가현립 나고야성박물관(佐賀縣立名護屋城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에 소개되어 있는 문건은 ‘대웅전 수리 계획서’, ‘수덕사 대웅전 내역서’, ‘교체 목재 명세서’, ‘수리 계획서’, ‘수리공사비’, ‘수리비’, ‘교체(取替) 목재 내역’, ‘수덕사 대웅전 사용목재’에 대한 것이다.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기록물은 수덕사 대웅전 수리공사 감독 촉탁 건, 수리공사 서기 임명 건 등이 있으며, 사가현립 나고야성박물관 소장 자료로는 ‘대웅전 수리공사비 보조금증액 신청건’, 수리공사비 정산서를 포함한 ‘수리공사 관계철’ 등이 있다. 수덕사 근역성보관에 소장되어 있는 문서 중에는 대웅전 수리 사전 조사를 요청하는 ‘대웅전수축조사원’, 충청남도 지사가 조선총독부에 대웅전 수리 필요성과 국고보조를 요청하는 ‘사찰건물수축조사원의 건’, 수리 계획 전반에 대한 내용이 담긴 ‘수리계획서’, 수리공사 집행의 필요 사항을 규정한 ‘수리공사취급수속’,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 1874~1955)가 수리공사 비용으로 일금(一金) 9,618엔(円)을 보조한다는 내용의 ‘지령안’, 오가와 케이키치(小川敬吉, 1882~1950)를 감독으로 선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수리공사에 관한 건’, 수덕사 주지 황법천(黃法泉) 스님이 조선총독에게 고벽화 발견 이후 수리 공사 기간 연장과 보조비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수리공사기간연장 및 보조비증액신청에 관한 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수덕사 대웅전의 공사에 참여한 실제 인물과 증액 등을 포함한 공사비, 공사 기간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며, 일제강점기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朝鮮寶物古蹟名勝天然記念物保存領)」 체제 아래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보수 공사가 어떠한 절차로 진행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수덕사 대웅전 수리공사는 보수 전 조사 후 현황 파악, 수리 방침 설계, 도면, 탁본, 서무와 회계 관련 규정, 인원 구성 등 모든 사항이 ‘보물건조물수덕사대웅전수리계획서(寶物建造物修德寺修理計劃書)’에 따라 철저히 진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자료는 수리 공사 과정에서 교체한 목재의 내역과 새롭게 새용한 목재 등에 대한 사항이 기록되어 있어, 원 부재와 보수 부재의 구분을 가능하게 하였고 후대 보존 수리 공사 등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관련기사
-
1937~1940년 수리공사1937년부터 1940년까지 4년에 걸쳐 시행된 수덕사 대웅전의 수리공사를 통해, 건립연대, 고려시대의 벽화, 가구 구조 등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수덕사 대웅전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었다. 이 수리공사와 관련된 모든 사항들은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朝鮮寶物古蹟名勝天然記念物保存領)」에 의거하여 ‘보물건조물수덕사대웅전수리계획서(寶物建造物修德寺大雄殿修理計劃書)’의 지침에 따라 시행되었다. 공사 이전 수덕사 대웅전은 구조적으로나 외관상으로나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수덕사 측에서는 기... -
대웅전수덕사 대웅전(大雄殿)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34년인 1308년에 창건된 불전으로 건립연대가 기록된 건축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미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창건 이후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2~1374) 때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 화상이 중수하고, 1528년(중종 23)에는 단청 보수 공사가 있었다.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수덕사도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대웅전 만은 큰 피해 없이 보존되었다. 이후 1688년(숙종 14)과 1751년(...
더보기 +
불교용어
-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봉안한 주불전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