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937~1940년 수리공사

1937년부터 1940년까지 4년에 걸쳐 시행된 수덕사 대웅전의 수리공사를 통해, 건립연대, 고려시대의 벽화, 가구 구조 등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수덕사 대웅전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었다. 이 수리공사와 관련된 모든 사항들은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朝鮮寶物古蹟名勝天然記念物保存領)」에 의거하여 ‘보물건조물수덕사대웅전수리계획서(寶物建造物修德寺大雄殿修理計劃書)’의 지침에 따라 시행되었다. 공사 이전 수덕사 대웅전은 구조적으로나 외관상으로나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수덕사 측에서는 기금을 모아 수리를 진행하고자 하였고,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 승인을 요청하였다. 공사 승인 요청사항에 대하여 조선총독부에서는 수덕사 대웅전의 현황을 확인한 후, 수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진행하도록 하였다. 수리공사에 관한 일체의 업무는 충청남도지사에게 맡기고, 도청에서는 이를 집행하기 위하여 위원부를 설치하여 학무과 및 회계과 직원을 임명하고 공사감독으로 오가와 케이키치(小川敬吉, 1882~1950)를 임명하였다. 공사는 모두 직영방침을 채택하여, 건당 업체가 견적서를 제출하고 최저가의 업체에게서 재료를 구입하였다. 총 공사비는 40,974엔(円)으로 오가와 케이키치가 쓴 보고서 초본 중 서론 부분에 언급되어 있다. 이 공사를 통해 수덕사 대웅전의 완전 해체수리가 진행되었으며, 훼손이 심한 부재에 한하여 부분 교체가 이루어졌다. 단청 역시 고채(古彩)와의 차별성이 없도록 실시하고, 조선시대에 제작된 풍판(風板)과 닫집 등을 철거하였으며 기와 부족분은 고와(古瓦)를 모본으로 제작하였다. 이와 같이 수리공사의 전반은 수덕사 대웅전을 건립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한 방침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공사는 기단공사, 목공사, 미장공사, 지붕공사로 시행되었고, 각각의 공사에 대해서는 관련 서류와 도면 작성, 사진 촬영, 모사 등을 통하여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수덕사 대웅전의 수리공사 내용은 당시 공사 감독이었던 오가와 케이키치가 작성한 수리기록 문서와 당시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서들은 국가기록원, 국립중앙박물관, 수덕사근역성보관, 일본 사가현립 나고야성박물관(佐賀縣立名護屋城博物館),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공학부 건축학연구실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건들은 수리계획서, 내역서, 사용재료 및 물목 등에 관한 것이며, 수덕사 근역성보관의 문건은 대체로 행정 공문서 유형의 자료이다. 또한 일본 사가현립 나고야성박물관 소장 자료는 공사 중 작성된 도면과 수습 묵서들, 공사 관련 공정 사진, 도면, 묵서 관련 기록 등 공사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문건들을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문화유산 수리에 관한 행정 및 수리 체계를 알 수 있다.

관련기사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