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대웅전 수리 당시 육안으로 확인되었던 단청은 초기 단청이라 볼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으며, 내부 단청이 일부 남아 있었지만 이 역시 초기 형태는 아닌 것으로 파악되었다. 내부 단청은 박락이 심하고 나중에 보색된 것으로 보이는 단청도 있는 상황이었고, 외부는 박락이 심하지 않아 단청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벽화의 경우 벽의 수리에 의해 없어진 곳도 있었지만, 다행히 벽의 덧칠을 벗겨낸 부분에서 고벽화가 발견되었다. 특히 고벽화의 발견과 함께 대웅전 벽화는 보존처리를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벽화의 모사도를 작성하여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단청과 벽화의 모사 작업은 당시 벽화 및 채색 단청의 모사 실측사무를 담당하였던 임천(林泉, 1908~1965)에 의해 1년여에 걸쳐 실시되었다. 먼저 시작된 단청 조사 및 모사 작업 중 1528년 ‘단청개채기(丹靑改彩記)’가 발견되어 조선시대 이전 단청의 존재 가능성이 재기되었고, 원래 단청의 희미한 윤곽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건물 내부 주위 창방 위에 있던 30여 면의 벽화에 대한 모사가 실시되었고, 그와 병행해 벽화에 대한 조사도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는 내부 벽면의 고려시대 벽화가 확인되는 성과가 있었다. 임천 선생은 조선시대 벽화와 함께 이 고려시대 벽화의 모사도를 작성였으며, 당시 그린 모사도 중 17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임천 선생이 모사한 벽화는 수생화도, 극락조도, 치성광여래도, 야생화도, 연화만초도, 주악비천도, 사체불도 등이다. 이 모사도는 지금은 확인할 수 없는 수덕사 대웅전 벽화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이와 함께, 모사도나 유리원판 사진으로는 살필 수 없는 외부 포벽의 나한도(羅漢圖) 모사도가 일본 사가현립 나고야성박물관(佐賀縣立名護屋城博物館) 소장 오가와 케이키치(小川敬吉, 1882~1950) 자료에서 9점 확인된다. 이 모사도는 한지에 먹으로 그리고 ‘속식, 단, 주홍, 옥식, 녹, 백, 홍, 분’ 등의 색명(色名)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각 장에는 방향을 나타내는 ‘외서(外西)’, ‘외동(外東)’, 그리고 순서를 나타내는 숫자가 표기되어 있다. 각 장에 표기된 ‘외(外)’라는 기록으로 인해 이 그림들은 수덕사 대웅전 외부 포벽에 그려졌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모사도는 수덕사 대웅전 외부 벽면의 벽화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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