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수덕사 유리건판 사진 중 상당 수를 차지하는 것은 1930년대에 진행된 수덕사 대웅전 수리공사 기록이다. 해당 공사는 1937년 1월부터 1940년 12월까지 진행되었으며, 이때 수리 공사의 전 과정이 촬영되어 유리건판으로 남아 있다. 또한 수리 공사에 앞서 1934년에는 해체 수리 이전의 대웅전 현황을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이러한 기록 작업으로 인해 수덕사 대웅전은 수리 전, 수리 중, 수리 후의 모습과 현재까지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다.
1930년대 대웅전 수리공사 시 촬영한 사진은 정면, 측면, 동측면, 서측면 등의 건물 외부 전방위뿐만 아니라 기단, 공포, 내부, 지붕의 수리 전, 해체 과정, 해체 상황 등을 상세히 남기고 있다. 또한 벽면, 창호 등의 해체 과정과 수미단 수리 과정, 불단, 닷집의 모습 등이 남아 있어 지금은 볼 수 없는 수덕사 대웅전 내부의 당시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마루의 해체 과정에서 드러난 초석의 배열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였고, 내부 기둥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고려시대 묵서, 벽화 등을 촬영 기록으로 남겨 대웅전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자료를 확보하였다. 이렇게 촬영한 각종 공사 과정과 부재에 대한 정보는 공사 중 작성한 도면 및 조사기록물을 통해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진자료 중 일부는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웹사이트에서도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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