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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건판: 1934~1940년

‘유리건판(Gelatin Dry Plate)’은 1871년 영국인 매독스(Richard Leach Maddox, 1816~1902)가 브롬화 은젤라틴 유제를 유리판에 도포한 건판에서 탄생하였다. 이후 근대적 방식의 촬영 매체로 활용된 유리건판은 20세기 초부터 공업생산품으로서 본격적인 제조가 이루어졌다.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는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 전역과 만주 등지에 있는 각종 유적과 유물, 민속, 자연환경 등을 조사하면서 유리건판 사진을 촬영하였다. 이때 촬영한 사진 38,000여 건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등 여러 곳에 보관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수덕사의 모습을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은 대웅전(大雄殿), 노전(爐殿), 청련당(靑蓮堂), 백련당(白蓮堂), 삼층석탑(三層石塔) 촬영분이 남아 있어,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 주요 건조물의 당시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총 3회에 걸쳐 사진 촬영이 이루어져, 1934년 수리 전, 1937년 수리 공사 당시, 1940년 수리 후 모습을 비교할 수 있다. 1937년, 1940년에 촬영한 대웅전 사진 중에는 해체 및 보수 과정, 묵서, 당시 발견 기와뿐만 아니라 보수 과정 중 발견된 고려시대 벽화, 해체 수리 중 촬영한 초석과 지붕 등의 모습이 담겨 있어 일제강점기 당시 보수 과정과 수덕사 대웅전의 오랜 역사를 규명할 수 있는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자료는 현 대웅전의 원형을 유추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유리건판 사진을 통해 수리 이전 대웅전의 모습을 살펴보면, 원래는 어칸(御間)에만 문짝이 있고 양쪽 협칸(夾間)에는 창살이 있었으며, 측면에 풍판(夾間)이 있었고 내부에 닫집이 있었다. 그러나 수리 이후 사진을 통해 대웅전 문짝이 모두 교체되고 풍판이 제거되었으며, 손상과 뒤틀림이 있던 여러 부재들이 교체되고 닫집 철거 후 육각 수미단을 보수한 모습 등이 확인된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수덕사 유리건판 사진은 수덕사의 옛 모습을 일부 복원할 수 있는 자료일뿐만 아니라 수덕사 대웅전의 건립 연대 묵서와 고려시대 벽화의 발견 당시 모습, 수리 이전 건물의 구조와 형식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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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 수리 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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