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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528년 단청기

1937년 수덕사 대웅전 해체·수리공사 중 고려~조선시대에 작성된 다량의 묵서가 발견되었다. 이 묵서 중에는 1308년에 건물을 지었다는 내용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단청, 개수, 중수 등 건물의 연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덕사 대웅전 묵서는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스기야마 노부조(衫山信三, 1906~1997)의 조사 일지 기록을 통해 내용을 알 수 있다. 1937년에 작성된 『1937年 保存修理 工事』 보고서에는 21건의 묵서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연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6건이다. 조선시대 기록은 중수기(重修記), 단청개채기(丹靑改彩記) 등의 성격을 지니며, 불사의 연유와 시주자, 불사에 참여한 인물들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한 경우가 많다. 특히 단청개채기는 1308년 중수 이래 1806년까지 꾸준히 수덕사 대웅전의 단청을 고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으로 의미가 있다. 한편 이 기록들에 있는 많은 인명 중에서는 당대에 활동하였던 조각승, 화승, 목수와 사찰의 주요 인사가 포함되어 있어, 관련 연구 자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1528년 단청 기록은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 상 본래 부재 두 곳에 나뉘어 기록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하중도리 계풍에만 남아 있다. 스기야마 노부조의 조사 기록에는 ‘전면 납도리 내부 우단(右端) 사이, 전면 중앙으로부터 약간 오른쪽에 글이 있음’이라 하였고, 임천(林泉, 1908~1965)의 글에는 ‘동쪽 전면 평도리에 백색분으로 쓴 단청개칠기가 있다’고 하였다. 하중도리 계풍의 기록과 현재는 사진으로만 확인되는 나머지 부재의 기록은 연대, 인명 등이 중복되어 거의 같은 내용을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록은 1528년 건물의 단청을 다시 칠하면서 남긴 기록으로, 불사의 목적과 참여 화원, 시주자 등의 명칭을 제시하고 있다. 대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경자년(庚子年)에 다시 칠한 단청이 무자년(戊子年)에 이르러 색이 없으므로, 가정(嘉靖) 7년 4월에 법당 단청을 시작하였으며, 5월까지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기록에서는 ‘경자년’과 ‘가정 7년’이라는 두 연대가 확인된다. 단청 개채가 이루어진 ‘가정 7년’은 1528년(중종 23)이다. ‘경자년’은 1528년 이전 단청 개채가 이루어졌던 해로, 수덕사 대웅전 중수 시기인 1308년~1528년 사이의 1360년, 1420년, 1480년이 ‘경자년’에 해당한다. 기록에는 ‘앞서 한 단청 개채가 무색(無色)하다’는 표현을 쓰고 있으므로, 시기 차이가 48년밖에 나지 않는 1480년 보다는 1360년, 또는 1420년에 앞선 단청 개채가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1528년 이전 단청 시기를 명확하게 추정하기 어렵지만, 이 기록을 통해 중수 이후 1528년까지 세 차례 이상의 단청 개채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단청 개채 작업에 참여한 화원은 ◯도(◯道), 행수(行修), 법정(法正), 월◯(月◯), 인전(印全), 지은(志閒), 심월(心月). 선희(善熙) 등 8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이 기록은 수덕사 대웅전 단청과 개채가 중수 이후에 꾸준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며, 특히 1528년 단청 개채에 참여한 화원의 수와 시주자 등을 통해 당시 불사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원문
(1) 하종도리 계풍 백서(白書) 庚子年丹靑改色至戊子◯無色耳 嘉靖七年戊子四月祝日始法堂丹靑畵員 ◯道行修法正月淳印全 ◯◯志誾 心月 善熙 施主信中布施大化主一禪 實念 供養主道◯戒斤 ◯◯◯◯五月十八日◯ ◯◯ 善熙 (2) ◯◯七年戊子◯◯丹靑◯色◯四月 日始至五月◯日 ◯色丹靑畵員 ◯◯法正行修◯仁月◯ ◯◯◯◯心月善熙 ◯◯大化主信中 ◯◯◯◯寫念 ◯◯◯◯信 供養主戒斤道◯ ◯◯◯◯ ◯◯◯◯善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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